[특파원 칼럼/유근형]‘온고’만 있고, ‘지신’은 없어 성장 멈춘 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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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형 파리 특파원 “열쇠를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지난해 파리 특파원에 부임해 프랑스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열쇠가 없어지면 열쇠공을 부르면 되지 않나’, ‘디지털 도어록으로 바꾸면 열쇠가 필요 없을 텐데’란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에 오래 산 사람들의 충고가 다소 의아하게 들렸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파리지앵에게 열쇠는 ‘지갑’같이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됐다. 프랑스에선 열쇠를 잃어버려도 문을 곧바로 따주지 않는다. 사생활,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이 강해 복잡한 신원확인 절차를 밟는다. 열쇠를 바꾸는 것보다 문 전체를 교체하는 게 빠르다는 말도 있다. 열쇠를 집에 두고 나왔다가 문을 열지 못해 하루이틀 호텔에서 지낸 사람도 있다.신(新)문물에 보수적인 프랑스 여전히 많은 프랑스인들은 도어록 대신 불편한 열쇠를 고수하고 있다. 여간해선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고 살던 모습 그대로 살아간다. 19세기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 내부엔 에어컨이 없고, 키오스크가 설치된 레스토랑을 찾기 어려운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보수적인 성향은 개인을 넘어 프랑스 경제산업 전반에도 영향을 미친다. 프랑스는 가전 등에서 ‘하이엔드 제품’에 대한 수요가 낮은 시장으로 평가된다. 최신 기술보다는 내구성과 가격 대비 성능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프랑스의 프리미엄 가전 시장 규모는 독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유럽 국가 평균의 60∼70%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소비 문화는 기술 혁신을 방해한다. 신기술은 소비자의 경험과 데이터가 쌓이면서 발전하기 마련인데, 신기술에 대한 수요가 충분치 않다 보니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다. 프랑스가 원전, 항공 등 국가 주도형 산업을 제외하면 세계적인 디지털 플랫폼 기업을 배출하지 못하는 건 이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이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되는 과정에서 프랑스의 성장동력은 빠르게 식어갔다.혁신 DNA 없인 재정위기도 해결 못 해 혁신의 부진은 단순히 기업 몇 개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면 양질의 일자리가 줄고 세수 확대에도 한계가 생긴다. 국가부채를 줄일 여력도 줄어든다. 프랑스가 최악의 재정위기와 약탈 등 폭력 사태에 빠져든 데는 이런 이유가 우선적으로 꼽힌다. 프랑스 정치권은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재정 적자를 줄이면서도 불만이 쌓인 국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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