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도 돈 안 아낀다…美 '반도체학과' 열풍인데 韓 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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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주 로체스터공대 내 반도체·마이크로시스템제조연구소(SMFL) 클린룸에서 마이크로전자공학과 학생들이 반도체 제조 공정을 실습하고 있다. /로체스터공대 제공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공대 내 반도체·마이크로시스템제조연구소(SMFL) 클린룸에서 마이크로전자공학과 학생들이 반도체 제조 공정을 실습하고 있다. /로체스터공대 제공

“PC가 나오던 1980년대처럼 놀라운 성장의 시기예요. 반도체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칼 허슈만 미국 로체스터공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14일 화상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최근 뉴욕주 고등학교를 돌며 입학설명회를 열었다는 그는 “5년 전만 해도 학생들이 반도체에 관해 전혀 몰랐지만 이제는 (반도체의 중요성을) 모두가 안다”고 말했다. 미국 전역에 반도체 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반도체 등 핵심 제조업을 부활시키려는 ‘아메리카 팩토리’ 정책이 교육 현장에서부터 뿌리내리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도 돈 안 아낀다…美 '반도체학과' 열풍인데 韓 뭐하나

14일 미국 전기전자공학자협회(IEEE)에 따르면 미국 퍼듀대의 2024년 가을~2025년 봄학기 반도체학과 학·석사 통합과정 등록자는 351명이었다. 2022년 5월 통합과정이 출범한 이후 여덟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미국 자동차산업 중심지 디트로이트에 있는 웨인주립대도 반도체 관련 강좌에 등록한 학생이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포드, 제너럴모터스(GM) 등 디트로이트에 자리 잡은 자동차 제조사가 반도체 연구 인력을 늘린 결과다.

테슬라, 오라클, 휴렛팩커드의 본사를 유치한 텍사스주는 미국 반도체 제조의 심장으로 떠올랐다. 텍사스대 오스틴 코크렐공과대에 2021년 설립된 텍사스전자연구소(TIE)는 4년 만에 20억달러(약 2조8000억원)를 투자받았다. 로저 보네케이즈 학장은 “7800㎡의 클린룸을 비롯해 최첨단 시설에서 올 하반기부터 최우수 반도체 엔지니어를 양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강국을 자부하는 한국은 최상위 대학조차 낡은 연구 인프라에 발목이 잡혀 있다. 양준성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현재 연세대가 보유한 반도체 시험생산 라인으로는 AI 반도체 등 첨단 연구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AI 투자 공약을 남발하는 사이에 한국의 반도체 제조 경쟁력이 빠르게 식고 있다”고 지적했다.

텍사스공대, 20억弗 유치해 반도체 연구…韓은 10년전 장비와 씨름
반도체 업고 뛰는 미국…관련학과도 제2 전성기

2019년 12월. 멍 치앙 미국 퍼듀대 총장(당시 공대 학장)은 국무부 과학기술 수석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제안에 응한 그는 미국 행정부에서 반도체가 지닌 지정학적 위상을 절감했다고 한다. 2022년 부총장으로 복귀한 멍 총장은 퍼듀대를 미국 반도체 인력 허브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인텔, 글로벌파운드리,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등 20개 미국 반도체 기업의 임원이 프로젝트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 미국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반도체산업이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핵심 전장으로 떠오르자 미국은 ‘칩스법’(반도체 지원법) 등을 통해 기업과 대학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이 덕분에 반도체학과가 1980년대 PC 시절 이후 제2 전성기를 맞고 있다. 공장만이 아니라 한국 반도체 제조·교육 전문가들이 미국으로 빨려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엔비디아 임원이 대학 강의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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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듀대는 2022년 ‘반도체로 세상을 바꾸다’라는 강의를 개설했다. 1학점짜리고, 신입생을 대상으로 만든 교양 과목인데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14일 퍼듀대에 따르면 이 강의 수강생은 첫해 159명에서 올해 329명으로 두 배로 증가했다. 엔비디아, TSMC, ASML 등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 임직원들이 연단에 올라 반도체를 통한 기술 혁신 사례를 소개하면서 학생들 사이에 입소문을 탄 것으로 알려졌다.

공대 비주류 취급을 받던 전기전자공학과의 인기도 치솟고 있다. 반도체가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5G(5세대) 이동통신 등 첨단산업을 바꾸는 기술로 재조명되고 있어서다. 데이비드 제인스 퍼듀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학생들은 돈을 좇는 것이 아니라 최첨단업계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시기 통과된 칩스법은 미국 반도체 교육을 되살리는 마중물이 됐다. 정부가 보조금을 통해 기업의 반도체 제조시설 투자를 지원한 결과, 기업들이 설비 가동에 필요한 인력을 고용하기 위해 대학에 재투자하는 ‘낙수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애리조나주에 따르면 칩스법이 시행된 이후 주에 투자된 자금은 1020억달러(약 144조원) 이상이다. 1만5700개 이상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애리조나주 전역에 있는 학교들이 이 기회를 잡기 위해 뛰어들고 있다.

◇반도체 연구 인프라 노후화 ‘심각’

애리조나주립대(ASU)는 지난해 웨스트밸리 캠퍼스에 반도체 특화 전기전자공학 학사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TSMC, 인텔 등 글로벌 기업의 반도체 생산기지가 애리조나에 들어서면서 인력 수요가 급증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ASU는 멕시코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온라인 강좌도 최근 개설했다. 마리코파·에스트렐라마운틴 커뮤니티칼리지는 TSMC에서 총 500만달러(약 71억원)를 지원받는 ‘수습 반도체 기술자’ 과정을 도입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립과학재단(NSF) 등의 과학 연구 예산을 대폭 삭감했지만, 반도체 예산은 예외다. 마크 인도비나 로체스터공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반도체 인력 개발 과정은 미국의 인프라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기에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NSF는 칩스법을 통해 대학들에 반도체 R&D 자금을 직접 지원해왔다.

국내 반도체 전문가들은 만성적인 반도체 연구시설 노후화와 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읍소하고 있다. 이혁재 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반도체 관련 강의에 정원의 두 배가 넘는 학생이 수강을 신청하지만 교수가 부족해 수업을 못 하는 상황”이라며 “대만 반도체 인력 양성의 허브인 대만국립대와 경쟁하기 위해서라도 교원을 지금의 두 배로 늘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인엽/오스틴=김채연 기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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