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오늘은 누가 인생 역전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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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오늘은 누가 인생 역전 성공할까

매주 토요일 밤 대한민국에서는 평균 8.2명씩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 탄생한다. 45개 번호 중 6개를 직접 고르는 추첨식 복권, 로또 1등 당첨자 얘기다. 복권은 불황을 먹고 자라는 사업이다. 국내 판매액이 2020년 5조원, 2022년 6조원을 넘어섰고 지난해엔 7조원을 돌파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는 인사 한 장 남기고 문을 닫는 가게가 줄을 잇는 와중에 로또 판매점은 오히려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로또 복권이 팔리기 시작한 것은 2002년 12월이다. 로또의 첫 등장은 강렬했다. 예전 복권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규모의 당첨금 때문이다. 출시 두 달 뒤인 2003년 2월에는 1등 당첨금이 835억원으로 불어나 온 나라가 들썩이는 일도 있었다. 직장인, 대학생, 주부, 농부, 심지어 노숙자까지 로또 명당 앞에 줄을 섰다. ‘로또 중독에 일손 놓은 사회’ ‘복권 이대로 좋은가’ 같은 제목이 신문을 장식했는데, 심해진 양극화와 아파트값 폭등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붙어 있다. 위험 수위로 치닫던 광풍은 정부가 게임 금액을 절반으로 깎고(2000원→1000원) 이월 횟수에 제한을 걸어 당첨금을 떨어뜨리고서야 대충 진정됐다.

우리가 1000원을 내고 로또를 한 장 사면 우선 절반인 500원을 뚝 떼어 당첨금으로 배정한다. 이 당첨금 중 350원이 1등 몫으로 쌓인다. 로또를 판매한 가게 사장에게는 55원을 떼어준다. 이후 이런저런 운영 비용을 제하고 410원이 복권기금에 들어가 각종 공익 사업에 활용된다. 저소득층 주거 안정부터 문화예술 진흥, 국가유공자 복지, 벤처 창업 진흥 등까지 폭넓게 쓰인다. 정부 관점에서는 복권만큼 조용히 돈 잘 벌어오는 효자가 없다. 세금은 0.1%포인트만 올리려고 해도 난리가 나는데, 복권은 조세 저항 없이 조(兆) 단위의 공공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

[토요칼럼] 오늘은 누가 인생 역전 성공할까

로또(lotto)가 이탈리아어인 데서 알 수 있듯 이 복권은 이탈리아에서 출발했다. 530년 피렌체에서 판매된 번호 추첨식 복권 이름이 로또였는데, 영단어 로터리(lottery)의 어원이기도 하다. 복권 전체로 개념을 넓혀보면 역사는 훨씬 더 길다. 기원전 고대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도시 복구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연회장에서 복권을 팔았다는 기록이 있고, 중국 진나라는 만리장성을 지을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복권을 발행했다고 한다. 프랑스 루이 15세와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때도 복권이 존재했다. 게임 방식은 지금과 달랐겠지만 ‘정부의 든든한 자금줄’이라는 역할은 그대로인 셈이다.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은 814만5060분의 1. 벼락을 맞아 숨질 가능성보다 낮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경제학자들은 다양한 이론을 동원해 로또를 분석한다. 행동경제학에서는 큰 보상에만 몰입돼 당첨 확률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하는 인간의 비합리성을 지적한다. 반면 기대효용 이론에 따르면 당첨 확률이 낮은 걸 알면서도 1주일간 심리적 만족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이들의 선택은 합리적이다. 양쪽 다 일리 있는 얘기다. 연유야 어떻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절박한 마음에, 누군가는 재미 삼아 번호를 고르고 있다.

현재까지 로또 1등 당첨자는 누적으로 9681명이 배출됐다. 무슨 꿈을 꿨는지 물었더니 ‘조상님 꿈’(29%)이 가장 많았다. 이들이 당첨금으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집을 사는 것(35%)이고, 대출을 갚는 것(32%)이 2위였다. 그런데 로또 1등의 행운을 맞더라도 ‘인생 역전’까지는 힘들어진 게 사실이다. 당첨금이 묶인 20여 년 동안 집값이 워낙 뛰어서다. 1인당 평균 당첨금은 20억2311만9513원. 서울에서 조금이라도 삐까번쩍한 아파트를 사려면 이 돈으론 불가능해졌다. 지난해 여름에는 1등 당첨자가 63명이 쏟아지면서 한 사람 몫이 4억1993만원에 그친 일도 있었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복권 제도 개선 방안’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로또 당첨금 상향을 검토하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해석되고 있다. 오른 물가를 반영해 당첨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지만, 좋게 봐야 할지 나쁘게 봐야 할지 판단이 쉽게 서지 않는다. ‘벼락거지’라는 암울한 신조어가 다시 여기저기에서 오르내리는 요즘이다. 로또 당첨금이 올라가면 고단한 이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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