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장용근]불법적 행태엔 전·현 정부 예외 없이 겨누는 감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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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감사’ 개혁 핵심은 모두로부터의 독립
정책은 집행-예산 효율성 묻는 감사로 제한
인사의 독립, 감사 착수 의결제 의무화해야

장용근 홍익대 법대 교수

장용근 홍익대 법대 교수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감사원의 기능을 국회로 넘길 수 있다면 넘겨주고 싶다”고 말한 데 이어 국무회의에서 ‘과도한 정책감사는 자제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하면서 감사원 개혁이 화두로 떠올랐다. 이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감사원 공약의 핵심은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 강화였다. 감사원은 정권을 거듭하며 ‘표적감사’ ‘정치감사’ 논란에 휩싸여 왔기에 개혁의 본질적 방향은 제대로 잡은 셈이다.

윤석열 정부에선 유병호 감사위원(전 사무총장)의 주도로 감사원이 전 정부를 향한 정치·표적감사를 거칠게 몰아붙여 논란이 됐다. 그러나 비단 전 정부뿐 아니라 총 5번의 감사가 이뤄진 4대강 사업 감사, 정권마다 결과가 달라진 탈원전 정책 감사 등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끊임없이 도마에 올랐다. 이는 검찰의 전 정권 보복·표적수사, 그리고 조선시대 사화처럼 반대파를 숙청하려는 뿌리 깊은 문제이기도 하다.

강자에게는 죄를 묻지 않고 약자만 처벌하거나 죄 없는 약자를 처벌하는 일은 법의 목적인 정의에 어긋난다. 이에 민주주의 국가들은 사법권의 완전한 독립을 보장해 법치주의를 제도적으로 실현하려 한다. 최근 개헌 논의에서도 감사원의 소속 문제가 거론되는데, 핵심은 소속의 형식적 이전이 아니라 감사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 보장에 있어야 한다. 감사원이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 다수당으로부터도 독립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제안된 개헌안 대부분이 감사원을 대통령이나 국회 소속이 아닌 독립기관으로 두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책감사도 무엇이 문제인지를 살피는 게 우선 돼야 한다. 정책감사는 노무현 정부 시절 정부 정책 집행 과정과 결과의 효율성을 점검하려고 도입됐지만 공무원들의 소극 행정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도 복지 프로그램 등의 집행적 타당성을 평가하고 있다. 정책 결정의 타당성은 정치 영역으로 감사원이 평가해선 안 되지만, 사업 집행 과정의 법 절차 위반이나 예산의 효율성 평가는 성과감사로서 정치 선진국에서도 이뤄진다. 새 예산을 짤 때 정책의 타당성을 점검하는 것은 재정 민주주의 실현의 핵심 감사 방법이다. 즉, 정권 교체기 전 정부 정책을 겨냥한 정치감사 관행은 문제이지만, 예산의 효율적인 집행을 위해 성과감사는 필요하다.

결국 감사원의 보복·표적감사를 해결하려면 외부의 부당한 정치적 압력을 줄이고 공정한 독립성을 확보하는 게 필수적이다. 그래야 ‘신상필벌’이라는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세계감사원장회의(INTOSAI)는 ‘리마 선언’, ‘멕시코 선언’ 등을 통해 최고 감사기구의 독립성 확보 지침을 마련해 왔다.

정치적 의도를 가진 전 정권에 대한 정책감사나 전 정권에서 임명된 공직자에 대한 표적감사를 막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고려할 수 있다. 첫째, 미국 감사원처럼 다수당이든 소수당이든 감사 요구가 있을 경우 감사원이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감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공평하게 모두 감사해 국민에게 투명하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한국에서처럼 집권세력에 대한 감사는 하지 않고, 전 정권이나 야당에 불리한 감사만 하는 관행과는 다르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잘못된 관행은 법 정신인 정의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찬란했던 로마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무너지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사실은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둘째, 독립기관이 진정 독립성을 확보하려면 인사의 독립이 선결 과제다. 감사원법 18조에 따르면 4급 이상 공무원은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쳐 감사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인사를 통해 감사원을 통제할 수 있는 셈이다. 이는 직무상 독립을 규정한 감사원법 2조에 반하는 근본적 문제이므로, 법원처럼 더 강한 독립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감사원은 감사원장 1인체가 아니라 감사위원 의결 중심주의로 운영되도록 돼 있다. 따라서 감사 개시 결정은 반드시 감사위원회를 통해 결정하도록 법 개정이나 관행 확립이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도 대선 과정에서 이러한 내용을 담은 감사원법 개정안을 제시했다. ‘상시 공직 감찰’을 명분으로 감사위 의결 없이 감사에 착수하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다만 전·현 정권의 불법적인 행태 조사를 막는 의결은 금지하도록 예외 규정을 둬 적극적인 조사를 통해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고, 불법을 덮는 소극적 감사는 막아야 한다.

이러한 개혁이 이뤄진다면 감사원이 추상적으로만 존재하는 허구의 민주주의에 머물지 않고 국민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혈세 낭비를 막을 수 있다. 또 기관의 존재 이유인 재정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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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근 홍익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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