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훈]상법 개정에 조용한 재계… 회초리 더 세질라 노심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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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산업1부 기자

이동훈 산업1부 기자
여야가 이사 충실 의무 대상 확대와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사외이사 독립이사 전환, ‘3% 룰’ 강화 등을 포함한 상법 개정안을 처리했지만 정작 이해당사자인 재계는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상법 개정이 이뤄진 당일인 3일 경제 8단체는 한 쪽짜리 반대 입장문을 냈다. 그 후 아무런 추가 움직임이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상법 추가 개정을 위해 국회 간담회를 개최한 11일에도 재계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가 “간담회 방청이라도 하려고 했는데 오지 말라고 하더라. 이건 이해당사자를 배제한 것 아니냐”고 푸념하는 데 그쳤다.

최근 재계에선 무력감과 패배감이 팽배하다. 재계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경제단체들마저 꿀 먹은 벙어리 신세다. 주요 그룹들은 ‘정치권 눈 밖에 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여야 모두 합의한 사항에 무슨 말을 더 하겠냐”고 말했다. 다른 그룹사 관계자는 “여당이 처음엔 3% 룰 도입과 관련해 재계 이야기를 들어 주겠다고 하더니 결국 아무것도 듣지 않고 강행했다”며 “추가 대화를 할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재계가 ‘로키(low-key)’ 기조를 유지하는 데는 정치권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강하게 반발했다가 더욱 강해진 입법 드라이브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당은 11일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 더 강해진 상법 개정안 논의에 나섰다. 민주당은 이 내용을 7월 중에 법제화할 방침이다. 재계 전체가 ‘입을 열면 더 두들겨 맞는다’는 분위기 속에서 숨죽이고 있다.

하지만 기업 경영 현장은 이미 혼란 상태다. 3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으로 인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되면서 기업들은 인수합병(M&A) 등 모든 의사 결정을 중단했다. 주식 상장, 연구개발(R&D) 등 기업의 중장기 발전을 위한 미래 투자도 전면 보류했다. 기업의 역량을 본업이 아니라 정치권 압박에서 벗어나는 데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델라웨어주는 기업 이사의 경영 판단을 폭넓게 존중한다. 고의나 중대 과실이 아닌 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 다만 정해진 면책 범위를 넘어선 경영자 행위는 강하게 처벌한다. 그런 정책 기조가 있어 글로벌 기업 상당수가 한국의 충남도 크기인 델라웨어주에 본사를 등록했다. 상법 개정으로 경영자 고유의 의사결정 폭을 좁혀버린 한국과는 대비되는 경우다.

상법 개정은 투자자 보호란 대전제를 갖고 시작됐다. 이는 존중해야 하고 기업들도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상법 개정의 결과물 중 상당 부분은 기업 활동을 치명적으로 어렵게 하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에서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나라에선 기업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정도다. 기업을 순수한 ‘악(惡)’으로 보고 입법을 밀어붙이기보다 기업과 투자자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도록 균형 있는 법 개정 방안을 고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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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산업1부 기자 dh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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