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항암제 올림픽'에 출전 못한 국내 제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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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항암제 올림픽'에 출전 못한 국내 제약사

“중국이 바이오기술 혁신의 발자취를 세계 무대에서 확대했다.”

지난 3일 폐막한 미국임상종양학회(ASCO)를 두고 현지 증권사인 트루이스트의 한 애널리스트는 이 같은 평가를 내렸다. 그는 “ASCO 발표 자료의 거의 3분의 1이 중국 기업의 신약 물질과 관련됐다”며 “중국이 연구개발(R&D)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항암제 올림픽’으로 불리는 이번 ASCO 행사는 중국 바이오기업의 약진과 기존 미국·유럽·일본 대형 제약사들의 수성 전략을 목격하는 자리였다. 세계 항암제 차세대 기술이 모두 모이는 자리인 ASCO에서도 주인공은 단연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 일본 다이이찌산쿄의 ‘엔허투’였다. 엔허투는 암세포만 정밀 타격하는 항체약물접합체(ADC) 다. 유방암 임상 3상에서 표준 치료제 대비 암이 자라지 않고 생존한 환자의 기간을 1년 이상 연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표준 치료제를 10년 만에 처음으로 넘어선 효과를 입증하며 찬사를 받았다.

엔허투는 다이이찌산쿄가 초창기 개발에 실패한 후에도 10년 이상 투자하며 방향성을 유지한 끝에 탄생했다. 공동 개발사인 아스트라제네카는 이번 행사에서 ADC를 앞세워 10년 내 암 정복을 이루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미국 화이자도 재발·전이성 두경부암 신약의 임상 1상에서 환자의 절반이 의미 있는 종양 축소 효과를 나타냈다는 발표로 주목받았다.

중국도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여줬다. 중국 제약사 아케소의 면역항암제 ‘이보네시맙’은 세계 연매출 1위 항암제인 키트루다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국내 기업은 올해 ASCO 행사에 20여 곳이 참가했지만 전통 제약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화제약이 유일하게 발표기업으로 이름을 올리고, 유한양행과 제일약품에서 자회사가 참여한 정도였다. 한국 전통 제약사들은 여전히 제네릭 중심의 사업 구조에 머물러 있다. 바이오벤처보다 자금력과 생산 인프라는 더 갖추고 있지만, 자체 혁신 기술 확보에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실적 유지가 경영 전략의 중심이 되다 보니, 혁신 신약 기술의 장기 육성은 사실상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연구개발(R&D) 방향 역시 비전문가 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런 구조에서는 ‘한국판 엔허투’가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파스칼 소리오 아스트라제네카 최고경영자(CEO)는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과학 중심의 리더십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을 신뢰하고 시간을 견디는 제약사만이 글로벌 무대에서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언젠가 ASCO 무대의 중심에서 한국 전통 제약사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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