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기업을 경영하려면 다른 나라에서는 접하기 힘든 위험 하나를 각오해야 한다. ‘경영 판단을 잘했더라도 회사가 손해를 보면 감옥에 갈지 모른다’는 점이다. ‘배임죄’에 걸리면 그렇게 된다. 기업을 키우다 보면 횡령, 탈세 같은 명백한 범죄 행위부터 산업 안전 미비, 불공정 거래, 노사 갈등 등 논쟁적 사안까지 ‘교도소 담장 위를 걷게 만드는’ 사유가 차고 넘친다. 하지만 배임죄는 차원이 다르다. 멀쩡한 기업의 경영자는 물론이고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자도 누구든 피의자가 될 수 있다.
회사가 제삼자와 거래하는 과정에서 그 제삼자가 이익을 얻고, 결과적으로 회사가 손해를 보는 상황이 생기면 경영자는 10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손해 액수가 크면 특별가중처벌 대상으로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 경영 판단을 잘못했다고 살인죄에 해당하는 형량을 살아야 하는 셈이다. 인수합병(M&A), 투자 유치, 자산 매각, 물품 거래, 용역 발주까지 모든 경영 활동이 대상이다. 당시에 ‘잘한 거래’였더라도 사후 판단에 따라 죄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 피해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미수’로 처벌받기도 한다. 그 ‘손해’의 정의도, 처벌 범위도 모호하다. 그야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법이다.
해외에선 배임죄를 형사처벌하는 나라가 드문 것은 이처럼 죄의 유무와 범위가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는 점 때문이다. 미국,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은 민사로 해결하거나 사기 등 다른 명확한 범죄가 동반될 때에만 형사처벌을 한다. 배임죄를 적용하는 몇몇 나라 중에서도 유독 한국이 처벌 강도가 세다. 그렇게 배임죄에 걸린 기업인이 부지기수다. 한국을 대표하는 그룹 총수도 줄줄이 이 혐의로 법정에 섰다. 검찰은 기업인을 타깃으로 수사할 때마다 적당한 혐의점을 찾지 못하면 배임으로 걸었고, 정치권은 이를 사주하거나 부추겼다. 모험과 혁신에 나섰다가 실패하면 감옥행이니 기업가정신이 발현될 여지가 제대로 생길 리 없다.
그런 배임죄가 이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대통령까지 겨냥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3년 대장동·위례 개발 특혜 의혹 등과 관련해 배임, 뇌물 수수,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상태다. 이 사업의 인허가를 주는 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어떤 이득을 취했는지, 공직자로서 의무를 위반하지는 않았는지 등을 제대로 따져봐야 하지만 배임 혐의까지 적용하는 게 맞는지는 법조계에서도 논란이 분분했다.
‘배임죄 피의자’ 대통령이 탄생함에 따라 공교롭게 그동안 배임죄 논란을 애써 무시하던 여당까지 그 문제점을 응시하는 상황이 됐다. 이제는 정치권에서 배임죄 폐지를 본격적으로 다룰 만한 때다. 마침 재판부가 얼마 전 이 재판을 연기함에 따라 이 대통령은 사법 리스크를 해소했다. 정부와 여당 입장에선 배임죄를 손보더라도 ‘대통령 비호’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됐다.
지금 기업인의 배임죄에 느끼는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 여당이 상법까지 개정해 기업인을 옥죄려 하고 있어서다. 이 개정안은 ‘경영진(이사)은 회사뿐만 아니라 앞으로 주주에게도 충실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단기적 시각의 주주 입장에 반하더라도 이를 무릅쓰고 중장기적 혁신과 투자를 결정해야 할 때가 있는데 앞으로는 엄두를 내기 힘들게 됐다. 주주 이익을 과도하게 챙기다가 장기적인 기업가치를 훼손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기업을 대상으로 한 주주들의 배임 소송이 더 남발될 가능성이 높다. 산업계의 혁신 노력은 더 얼어붙을 것이다.
이 대통령도 그런 기업들의 위기감을 알고 있다. 당 대표 시절이던 지난해 “상법이 개정되면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주주들이 고발하고 기업인이 수사당할 수밖에 없다”며 “그에 앞서 배임죄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말처럼 상법 개정에 앞서 배임죄 존폐 여부를 우선 논의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위험한 도전이 가능한 나라여야 혁신도, 새로운 성장도 가능하다”고 했다. 지금 기업인들이 느끼는 심정이 그럴 것이다. 위험한 도전을, 선의의 실패를 처벌하면 누구도 혁신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