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누가 홈플러스를 망하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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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누가 홈플러스를 망하게 했나

“홈플러스가 대한민국에서 쫄딱 망하고 한 푼도 못 건지게 만듭시다.”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당시 민주통합당 의원)는 2012년 8월 홈플러스 합정점 입점 반대 집회에서 “마포구 주민들은 홈플러스가 합정동 4300평 자리에서 쫄딱 망하게 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홈플러스를 막아선 정치인은 정 전 대표뿐만이 아니다. 당시 시민단체는 물론 상당수 정치권 인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린 대형마트 입점 반대 집회에서 “대형 유통자본의 탐욕이 골목상권을 위협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경제 민주화’를 명목으로 대형마트 의무휴업 도입과 심야영업 금지 등을 골자로 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이 이뤄졌다. 정치권이 대형마트 규제 법안을 만지작거리는 동안 유통업계 주도권은 서서히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갔다.

휴업일인지 모르고 대형마트에 갔다가 헛걸음한 소비자는 전통시장 대신 e커머스를 찾았다. 쿠팡과 컬리 등 e커머스 기업은 365일·24시간 영업과 새벽 배송이라는 이점을 살려 마음껏 사업영역 확장에 나섰다. 규제에 손발이 묶인 대형마트는 e커머스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고객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대형마트 업계 2위이던 홈플러스는 2021년부터 5년 연속 적자를 냈고 끝내 파산의 기로에 섰다. 홈플러스가 직간접으로 고용한 1만2000여 명은 일자리를 잃고 거리에 나앉게 생겼다.

그러자 과거 홈플러스를 ‘탐욕 자본’으로 몰아붙인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이번엔 정부와 기업을 향해 “홈플러스를 살려내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민병덕 의원은 지난달 30일 “홈플러스가 청산의 길로 접어든다면 이는 한 기업의 파산이 아니라 10만 가구를 벼랑으로 내모는 국가적 민생 재난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민 의원은 지난 3월 대형마트 새벽 배송 규제 완화 논의에 대해 “대형마트 규제를 풀어 또 다른 거대 유통에 특혜를 주는 방식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것”이라며 반대했다.

이들의 ‘태세 전환’을 지켜본 유통업계는 싸늘한 반응이다 못해 허탈해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가 창출한 수십만 개 일자리의 가치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죽이기에 앞장선 이들이 이제 와서 홈플러스를 살려내라고 외치는 건 불 지른 사람이 소방차를 부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사태는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한 섣부른 규제가 어떻게 기업을 망가뜨리고 시장 생태계를 교란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낡은 규제를 과감히 혁파하고, 시장 참여자 모두가 공정히 경쟁할 수 있는 운동장을 조성하지 않으면 제2·제3의 홈플러스 비극은 되풀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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