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서 대한뉴스를 틀어주던 시절, 공항에서 시청 앞 광장까지 카퍼레이드한 주인공은 대부분 스포츠 스타였다. 사라예보의 전설 이에리사·정현숙, 4전5기의 신화 홍수환,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등. 음악인으로 카퍼레이드의 영예를 누린 사람이 있다. 정명훈(72)이다.
1974년 7월,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공동 2위에 오른 그는 가두의 시민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훈장도 받았다. 1인당 국민총생산(GDP) 500달러 시절, 세계 최고 클래식 경연대회에서 한국인의 기개를 떨치고 왔으니 왜 자랑스럽지 않았겠는가. 3위까지 입상자 중 정명훈을 제외한 모든 수상자가 당시 소련인이었고, 1위는 후일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의 사위가 된 안드레이 가브릴로프였다.
정명훈은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 일곱 살에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하이든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하며 데뷔한 피아노 신동이었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간 후 한동안 피아노를 등한시했다. 음악의 길로 다시 이끌어 준 은인은 어머니 고 이원숙 씨다. 어머니는 “왜 피아노를 치지 않느냐”며 다그치는 대신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며 1달러씩 받은 팁을 모아 그랜드 피아노를 할부로 구입해 아들에게 선물했다. 정명훈과 누나 정명화, 정경화 등 ‘정트리오’를 키운 어머니는 1990년에 국민훈장을 받았다.
정명훈은 다니엘 바렌보임, 앙드레 프레빈처럼 피아니스트에서 지휘자로 변신해 거장에 올랐다. 36세 때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돼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내년 말부터 247년 역사의 이탈리아 오페라 명가 라 스칼라 극장의 음악감독을 맡는다고 한다. 아시아인으로 최초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클라우디오 아바도, 리카르도 무티 등이 거쳐 간 자리다. 오늘날 정명훈의 출발점이 된 차이콥스키 콩쿠르 초대 우승자가 미국 피아니스트 밴 클라이번이다. 그의 이름을 딴 밴클라이번 콩쿠르의 역대 최연소(18세) 우승자가 임윤찬이다. 정명훈이 씨앗을 뿌린 K클래식이 이렇게 뻗어가고 있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