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큰 인물 될지…항상 제자를 존대하오" [고두현의 문화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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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 인상주의 출발점인 ‘인상, 해돋이’. 모네는 늘 “스승이 일깨워준 빛의 예술 덕분”이라고 말했다.

모네 인상주의 출발점인 ‘인상, 해돋이’. 모네는 늘 “스승이 일깨워준 빛의 예술 덕분”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체육 시간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운동장이 기우뚱하는 순간 쓰러지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선생님이 “너… 영양실조구나”라고 말했다. 너무 가난해서 절집 곁방에 얹혀살던 그때 제대로 먹지 못하고 20리 가파른 길을 매일 오르내린 탓일까. 그날따라 더 빈약해 보이는 팔다리가 유난히 부끄러웠다.

이 사건 이후 담임 선생님이 절집으로 ‘가정 방문’을 왔다. 이래저래 집안 사정을 알고 학자금이 밀린 사연도 알게 됐다. 얼마 후 교무실 회의를 마치고 나온 선생님이 “다들 월급에서 1%씩 떼어 마련했다”며 하얀 봉투를 건넸다. 그러고는 인기 만화 주인공에게 하듯 “고 박사! 장학생이 됐으니 더 열심히 하고 먹는 것도 잘 드시게”라며 반존댓말로 자존감을 높여줬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펌프장서 손에 '물(water)' 철자

어린 학생들을 존대한 이승훈(왼쪽)과 안창호.

어린 학생들을 존대한 이승훈(왼쪽)과 안창호.

어린 제자를 존대하며 기를 살려준 선생님의 마음은 얼마나 깊고 따뜻한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남강 이승훈은 오산학교를 설립한 뒤 모든 제자에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그는 “누가 장차 큰 인물이 될지 모른다”며 “이들 중 나라를 빛내고 광복에 기여할 훌륭한 인물이 나올 수 있으니 항상 공경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제자들이 쓰레기 줍기에 나서려 하자 “훌륭한 인재가 될 사람들에게 어찌 이런 일로 시간을 뺏기게 하겠는가”라며 직접 궂은일을 했다.

그가 민족 계몽에 힘쓴 계기는 도산 안창호의 ‘교육진흥론’ 강연이었다. 안창호 역시 “내 제자가 나보다 클 수 있다”며 학생에게 높임말을 썼다. 흥사단과 대성학교를 통해 많은 인재를 길러낸 그는 “지도자는 말을 앞세우기보다 행동으로 본을 보여야 한다. 내가 가르친 아이 중 장차 나보다 나은 이가 있으리라” 하며 자신을 낮췄다.

인도의 간디도 공동체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쓰고 자기가 먼저 바닥을 청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아이가 실수로 그릇을 깨뜨렸을 때 꾸짖기는커녕 “그릇보다 네 마음이 다치지 않았는지 보자”고 말해 아이를 울게 했다. 그가 “사람을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나이도 지식도 아닌 사랑과 존중”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와 맞닿은 정신이다. 이런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는 더 큰 사랑의 꽃이 피고 열매도 크게 맺힌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게 된다.

시청각 장애로 고통받던 헬렌 켈러가 앤 설리번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글을 배우는 과정을 떠올려보자. 생후 19개월 때 열병으로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고 좌절하던 헬렌에게 설리번은 손바닥에 알파벳을 쓰는 방식으로 ‘단어’와 ‘사물’을 연결하는 교육을 시도했다. 한쪽 손으로 펌프에서 나오는 차가운 물을 느끼게 하고, 다른 손바닥에 ‘물(water)’의 철자를 하나씩 썼다. 그때 헬렌이 단어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하는 장면은 눈물겹다.

그 순간 설리번도 가슴이 벅차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 같은 노력 끝에 언어와 소통의 문을 연 헬렌은 이런 명문을 남겼다.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첫째 날엔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겠다. 둘째 날엔 밤이 아침으로 변하는 기적을 보리라. 셋째 날엔 사람들이 오가는 평범한 거리를 보고 싶다. 단언컨대 본다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다.”

예술사의 이면에도 감동적인 사제간 일화가 많이 숨겨져 있다.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를 키운 스승은 피렌체 화가 기를란다요였다. 그는 12세 미켈란젤로를 견습생으로 받아들인 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벽화 작업에 참여시키면서 “나보다 많이 알고 있구나”며 감탄했다. 2년 뒤 메디치 가문의 추천 의뢰가 왔을 때 소년 미켈란젤로를 강력하게 추천했고, 이후 평생을 아름다운 사제와 예술의 동반자로 지냈다.

'월급 1%' 장학금 모아 준 선생님

인상주의 시조 모네에게 ‘하늘을 보는 법’을 가르쳐준 부댕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모네는 실내에서 만화와 풍자화를 끄적이다가 어느 날 풍경화가 부댕을 만났다. 부댕은 모네를 바닷가로 데려가 하늘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하늘과 바람, 바다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 자체로 마주해봐. 그림은 교실 안이 아니라 하늘 아래에서 배워야 해.”

부댕은 색채 변화를 관찰하는 법과 빛의 방향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과정, 구름과 그림자의 영향을 설명하며 ‘빛의 예술’을 가르쳤다. 여기에서 모네의 ‘야외 화법’이 태동했다. 인상주의 상징인 ‘인상, 해돋이’를 그릴 수 있던 것도 자연을 새롭게 보는 시선 덕분이었다. 모네는 “부댕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그는 나의 눈을 열어준 사람”이라고 말했다. 한 사람의 가르침과 격려가 한 세기의 예술을 바꾼 것이다.

작곡가 브람스(왼쪽)와 그의 제자 드보르자크.

작곡가 브람스(왼쪽)와 그의 제자 드보르자크.

브람스와 드보르자크 사이도 각별했다. 체코의 가난한 작곡가 드보르자크가 ‘오스트리아 국비 장학금’에 응모했을 때 심사위원 브람스는 그의 악보를 보고 “보배!”라고 외쳤다. 이후 유명 출판사에서 ‘슬라브 무곡’을 출판하게 해 전 유럽에 그의 이름을 알렸고 “드보르자크 작품을 들을 때마다 내가 더 살아 있는 것 같다”며 응원을 계속했다. 그런 스승에게 드보르자크는 “그분은 장학금을 줬을 뿐만 아니라 내 손에 음악 인생의 나침반을 쥐여준 은인”이라며 존경과 신뢰를 보냈다. 두 사람은 평생 인간적 우애를 나누며 서로 존중하고 사랑했다.

고두현 시인

고두현 시인

참된 사제는 이처럼 지식이나 기예를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서로 인생에 빛을 비추며 영감의 불꽃을 함께 피워 올리는 관계다. 올해도 ‘스승의 날’을 맞아 수많은 이가 아름다운 꿈을 꿀 것이다. 어린 날 영양실조로 쓰러졌던 학교 운동장과 혼자 물배를 채우며 손등을 훔치던 수돗가에서도 그랬다. 그때 그 꿈의 불씨를 밝혀준 선생님들을 생각하며 이제는 내가 매월 ‘1%의 꿈’을 흰 씨앗 봉투에 남몰래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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