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이 미국산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를 명문화한 법안을 그제 발의했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믿고 현지에 대규모 투자한 한국 기업들로서는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원 세입위원회의 안에 따르면 IRA의 전기차 세액공제(30D)는 2027년 폐지된다. 현재 일정 요건을 충족한 전기차를 구매한 소비자는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이 시한을 당초 2032년 말에서 2026년 말로, 6년이나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또 현대차와 같이 최근 6년간 미국에서 20만 대 이상 전기차를 판매한 기업은 당장 내년부터 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배터리 업체에 지급하는 생산세액공제(AMPC) 역시 1년 앞당겨진 2031년 말까지로 단축된다.
미국에서 세 번째로 전기차를 많이 파는 현대차그룹은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K배터리도 전기차 수요 위축과 AMPC 조기 폐지의 악영향을 받는다. 미국에 생산라인을 구축한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2023년 이후 2년 동안 각각 2조원, 1조원 규모의 AMPC를 받았다.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는 단독 또는 합작 형태로 공장을 운영하거나 건설 중이다.
현재 법안대로 IRA법이 폐지된다면 이는 사실상 미국 정부가 한국 기업의 ‘뒤통수’를 치는 행태와 다름없다. 현대차그룹과 K배터리 기업은 미국 정부 약속을 믿고 막대한 투자를 단행했다. 더 나아가 지난 3월 현대차그룹은 향후 4년간 210억달러를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 미국의 보조금 정책이 오락가락하면 경영 전략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번 법안은 세입위에서 발의한 것으로 확정된 건 아니다. 또 향후 심의 과정에서 세액공제 정책의 수혜를 보는 지역구 의원들의 반대에 부닥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 의회는 한국 기업이 수십조원을 투자했고 공장마다 수천 명씩 고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도 기업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미 의회와 당국을 상대로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