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4월 4일 미국 수도 워싱턴DC에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주요 12개국 대표가 모여 한 장의 문서에 서명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설립을 위한 협약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 시대가 열리자 소련의 팽창을 막기 위한 집단 안보체제는 이렇게 탄생했다.
나토를 상징하는 문구는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은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조약 제5조다. 이른바 ‘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One for all, All for one)’의 정신이다. 한 국가가 침공받으면 모든 회원국의 자동 개입을 보장하는 이 약속은 나토 설립 후 77년간 서구를 지킨 버팀목이다.
역대 가장 성공한 동맹으로 평가받는 나토에 균열이 생겼다. 진원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에게 나토는 가치를 공유하는 혈맹이 아니라 ‘거래의 대상’이다. 그는 집권 초기부터 유럽을 향해 “안보 무임승차”라고 비난하며 청구서를 들이밀었다. “그린란드를 매입하겠다”고 나서 유럽 전체를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근거 없는 불만은 아니다. 미국은 NATO 운영비의 70% 가량을 홀로 부담해 왔다.지난해 나토 회원국은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까지 끌어올리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굴복했다.
미·이란 전쟁이 한 달째 이어지면서 균열과 파열음은 더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지원을 거부한 유럽 동맹국을 향해 “당신들이 우리를 위해 그곳에 있지 않았듯이, 미국도 더 이상 당신들을 돕기 위해 그곳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유럽의 반응은 냉담했다. 폴란드는 패트리엇 포대 파견을 거부했고, 이탈리아는 미군기의 자국 기지 착륙마저 불허했다. 스페인은 아예 영공을 닫았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이것은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고 선언했다. 유럽은 한발 더 나아가 독자 안보 체제를 고민하고 있다.
미국이 나토에서 발을 뺄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신뢰를 근간으로 한 동맹이 변질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안보 우산이 사라지는 시대, 우리는 스스로를 지킬 힘과 비용을 증명할 수 있는가. 이것이 나토 위기론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이심기 수석논설위원 sglee@hankyung.com

5 hours ago
1
![[만물상] 나프타가 뭐길래](https://it.peoplentools.com/site/assets/img/broken.gif)
![[시론] '에너지 맷집' 키워야 위기 넘는다](https://static.hankyung.com/img/logo/logo-news-sns.png?v=20201130)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