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에너지 맷집' 키워야 위기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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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에너지 맷집' 키워야 위기 넘는다

세계 에너지 시장이 이란전쟁으로 크게 요동치고 있다. 브렌트유 가격은 전쟁 이전보다 50% 이상 상승했고, 천연가스 가격도 급등했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역사상 가장 큰 에너지 공급 충격”으로 평가하며 장기화를 경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쟁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위기가 닥친 것이다.

에너지 위기의 상시화가 우려된다. 신냉전 심화로 지정학적 갈등이 빈번해지는 가운데, 전쟁은 거의 예외 없이 에너지 공급망 충격으로 번지고 있다. 여기에 탈탄소 전환 과정의 구조적 불안정성도 위기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대되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여전히 화력발전의 백업 기능으로 보완하는 현실 탓이다.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이 곧바로 화석에너지의 수급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2021년 말 유럽에서 발생한 이른바 ‘퍼펙트스톰’이 대표적 사례다. 풍력 발전량이 급감하자 이를 메우기 위해 화력발전이 급증했고, 그 결과 가스 가격이 여섯 배 이상 폭등했다. 이는 에너지 전환 과정 자체가 또 다른 위기의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신냉전과 탈탄소의 세계사적 흐름이 유지되는 한, 에너지 위기는 빈번하게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에게는 치명적 상황 전개다. 선택지는 분명하다. 외부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이를 견뎌낼 ‘에너지 맷집’을 키워야 한다. 에너지를 적게 쓰는 동물일수록 혹독한 겨울을 더 잘 견디듯, 에너지 효율이 높은 경제일수록 충격 흡수 능력도 강해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5위에 이를 정도로 에너지 소비가 많은 편이다. 에너지 다소비 부문 비중이 높은 산업 구조의 영향도 있지만 반바지 난방, 개문 냉방과 같은 비효율적 소비 관행도 한몫하고 있다.

물론 우리에게 낭비벽이 있어서가 아니다. 근본 원인은 가격에 있다. 우리나라의 석유와 가스 가격은 미국을 제외한 주요 선진국보다 낮고, 전기요금 역시 OECD 최하위권이다. 가격이 낮을 때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낭비가 아니라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일 뿐이다.

가격은 수급 조정 신호다. 최근 국제 유가 급등은 공급 감소에 대응해 소비를 줄이라는 시장의 강력한 경고다. 그러나 우리는 위기 때마다 물가 안정과 서민 보호를 이유로 가격 상승을 억제해 왔다. 결과로 돌아온 것은 왜곡된 시장이다. 에너지 공기업의 대규모 누적 적자와 에너지 과소비 그리고 취약한 에너지 대응력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제 가격 정상화를 통해 에너지 맷집을 키워야 한다. 석유와 가스는 대표적인 글로벌 재화다. 국내 가격이 국제 가격에 연동되는 것은 당연하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 세계와 더불어 절약의 고삐를 당기고, 유가가 안정되면 정상 소비로 돌아오는 것이 순리다.

가격을 억누른다고 수급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가격은 체중계와 같다. 잘못된 체중계가 비만 관리를 방해해 작은 질병에도 앓아눕는 허약 체질을 만들 듯, 가격 인상을 억제하는 정책은 에너지 다소비 구조를 고착화해 작은 충격에도 흔들리는 취약한 경제를 낳는다. 가격 신호를 억누르면 당장 소비자 부담을 덜어주는 듯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에너지 절약과 효율 개선의 유인을 제거해 더 큰 구조적 취약성을 남길 뿐이다.

에너지 위기는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버텨낼 유일한 방법은 왜곡 없는 가격 신호를 통해 경제의 에너지 맷집을 키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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