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운이 좋았다'는 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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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 칼럼] '운이 좋았다'는 말의 힘

“성공은 운발이다.”

기자로 일하면서 자주 들은 말 중 하나다. 인터뷰든, 강연이든, 식사 자리든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성공한 사람, 대기업의 리더가 된 인물 중 상당수가 ‘운’을 자신의 성공 비결로 꼽았다. 처음에는 그저 겸손한 수사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반복해서 듣다 보니 진실에 가까운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존경받는 리더일수록 자기 자랑보다는 “운이 절대적이었다”고 고백한다.

인성 아닌 인지의 문제

이런 말은 단순한 한국적 겸양의 미덕이 아니다. 본인 업적을 내세우는 게 자연스러운 서구권에서도 자주 발견되기 때문이다. 워런 버핏이 대표적이다. 여러 차례 “나는 난소 복권에 당첨됐다(I won the ovarian lottery)”고 했다. 미국이라는 나라, 백인 남성이라는 성별, 중산층이라는 배경에서 태어났다는 점이 평생의 행운이라는 것이다. 그는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의 자산을 쌓을 수 있었겠느냐”고도 했다. 자신이 미국식 자본주의의 수혜자임을 분명히 인식했다.

테니스의 전설 로저 페더러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2022년 은퇴 기자회견에서 그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했다. 큰 부상 없이 긴 선수 생활을 했다는 것, 자신을 믿어준 부모와 코치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치열한 경쟁자들과 동시에 활동한 것도 “실력을 키워준 행운”이었다고 했다. 그는 단순한 겸손을 넘어, 성공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이러한 인식은 미덕 그 이상이다. 심리학자 캐럴 드웩은 ‘성장 마인드 셋’ 이론에서 인간이 자신의 성과를 ‘과정’과 ‘외부 요인’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더 유연하고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반대로 모든 성공을 고유한 능력의 결과로만 여기는 ‘고정 마인드 셋’은 실패에 취약하며 타인의 성과를 위협적으로 느낀다고 했다.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경험을 절대화하지 않기에, 타인의 가능성과 사회적 변수를 수용할 여지를 남긴다.

이는 인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지의 문제다. 자신을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이는 타인의 공로를 인정하고 실패자나 경쟁자에게 관대하며, 사회적 책임에도 민감하다. 반면 자신의 성공을 오직 노력과 능력 덕분으로만 돌리는 사람은 타인의 실패를 무능으로 해석하며 오만해지기 쉽다.

운 없는 사람에 관대해야

한국은 리더십 교체기를 맞았다. 정치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 분야에서 리더가 바뀌었고, 또 바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분명히 대단히 노력했고 능력도 있겠지만, ‘운 좋은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들과 비슷한 능력을 갖추고 노력하고도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한 ‘운 없는 사람’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리더는 선택받은 자이지만, 그 선택이 곧 행운일 수 있다. 그 행운은 누군가의 희생이었고, 누군가의 선택이었으며, 시대가 만들어낸 우연의 결과물일 가능성도 높다. 그 사실을 인식하고 이해한다면 스스로 오만해지기 어렵고, 성공 앞에서 낮은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많은 매체가 새로운 리더를 인터뷰하겠다고 나설 것이고, 그 내용은 미디어에 계속 실릴 것이다. 그 기사들 속에서 “운이 좋았습니다”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길 기대해 본다. 운이 좋았다는 말은 겸손한 표현이 아니다. 세상을 책임 있게 보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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