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AI 기본법, 시행 유예·재검토 필요하다

3 hours ago 1
이성엽 고려대 교수이성엽 고려대 교수

유럽연합(EU)의 인공지능법(AI act)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작년 12월 통과된 한국의 인공지능(AI) 기본법은 AI 혁신과 규제를 균형적으로 달성하고자 산업진흥과 안전성 규제를 위한 여러 법 조항을 도입했다. 이 법은 EU법에 비하면 규제 총량이나 강도가 상당히 약화돼 있어 혁신친화적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며, AI 산업 진흥을 위한 지원 정책이 체계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법 시행으로 AI 기술 개발, 제품·서비스 제공에 대한 규제 불확실성이 제거될 것으로 보았으나, 당초 기대와 달리 과도한 규제 내용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마침 한국인공지능법학회는 AI 기본법 제정 직후인 지난 1월부터 학자, 연구자, 판사, 변호사 등 법조 실무가, 공공기관 관계자, 기업 관계자 등 약 50명 전문가가 참여하는 법 개정 연구위원회를 발족해 법 개정 연구를 진행했고 지난 16일 중간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법이 제정된 후 시행 전에 국내 AI 법 전문가 대부분이 참여해 법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의 개정 목소리를 높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만큼 법 제정 과정에 전문가 참여가 부족했다는 점과 기존 제정법에 이론적, 실무적 문제가 많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학회의 지적 사항의 요점은 모든 분야에 일률적으로 AI 규제를 도입할 것이 아니라 각 영역에서 행위와 용례를 중심으로 필요한 규제를 핀셋형으로 하자는 취지다. 특히, 고영향 AI의 경우 주무 부처가 큰 그림을 그리되, 각 부처가 도메인별로 소관 법령 정비를 통해 집행하는 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기준으로 하는 의인화 기반 AI 개념의 재정립, 개념 모호성이 큰 고영향 AI에 대해서는 권익 영향 AI와 안전 영향 AI로 이원화, 행정규제로 작용할 수 있는 고영향 AI 확인 조항 개정, 생성형 AI의 일률적인 표시, 고지 의무 개선 등이 포함됐다.

전체적으로 타당한 지적이다. 사실 AI 기본법의 핵심 문제는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국이 기존 규제에 AI를 적응시켜 맞춤형 규제를 하는 부문 '특유적(sector-specific)' 규제 체계를 취하고 있는 점과 달리 EU와 같이 포괄적, 수평적 규제를 도입하고 있는 점이다. 수평적 규제는 AI 산업 진흥을 결정적으로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미국, 중국 등 AI 선도 국가는 이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 특히, 미국과 중국에 이어 AI 3대 강국을 목표로 하는 한국 입장에서 전면적 AI 규제 도입은 부정적 효과가 상당할 수밖에 없다. 국내 AI 경쟁력은 기술, 인력, 자본 등 전 분야에서 중위권에 머무르고 있는데, 여기에다 전면적 규제까지 시행하는 것은 AI 3대 강국의 목표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일부 시민단체의 경우에는 금지 AI 규정의 부재, 국가안보 목적 AI의 법 적용 제외 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AI 기본법 규제 조항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시행을 유예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국회에서도 황정아 의원의 시행 3년 유예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또 EU법은 고위험 AI를 포함해 내년 8월 전면 시행되는 데 반해, 한국법은 내년 초로 예정되어 있어 고영향(위험) 기준으로 하면 세계 최초의 법 시행 국가가 된다. 또한 현실적으로도 수범자인 기업이 AI 기본법 준수를 위한 조직, 인력 등을 갖추기 위해서도 시행 유예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일단 법 시행을 일정 기간 유예하고 그 기간 동안 AI 기술과 해외 규제 동향을 고려해 이해관계자, 전문가와 충분한 숙의를 거쳐 합리적인 법 개정안을 마련하는 것이 AI 강국에 진심인 신정부 입장에서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할 것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dysylee@korea.ac.kr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