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형석 칼럼] 'AI 내각'이 잊지 말아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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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형석 칼럼] 'AI 내각'이 잊지 말아야 할 것

국내 인공지능(AI) 기업들은 요즘 축제 분위기다. 이재명 대통령이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 개를 지원하는 등 100조원을 AI 분야에 투입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시작이었다. 대통령실과 내각엔 기업인 출신 AI 전문가가 대거 입성했다. ‘AI 전도사’로 불린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 센터장이 초대 AI미래기획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LG그룹 AI 플랫폼 구축을 주도한 배경훈 LG AI연구원장(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 국내 첫 상용 AI인 하이퍼클로버를 선보인 한성숙 전 네이버 대표(중소벤처기업부)는 장관 후보로 지명됐다. 정부의 적극적인 행보에 주식시장도 후끈 달아올랐다. 고점에 물린 개인투자자가 많아 ‘국민 실망주’로 조롱받던 네이버, 카카오의 주가는 이달 들어서만 50%가량 급등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AI 정책은 ‘소버린 AI’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빅테크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인프라와 데이터를 통해 독립적인 AI 역량을 구축하겠다는 뜻이다. 이 대통령은 울산 AI 데이터 출범식에서 “챗GPT가 있으니 소버린 AI 개발이 낭비라는 주장은 베트남에 (값싼) 쌀이 많으니 한국에서 농사지을 필요 없다는 얘기랑 똑같다”고 말했다. 외국산 AI가 저렴하고 효과적이어도 자체 AI 생태계가 없으면 빅테크에 종속된다는 메시지다. 국방, 안보, 행정 같은 국가의 핵심 기능을 해외 AI 플랫폼에 의존할 수 없다는 주장은 반박이 어렵다.

하지만 ‘한국판 챗GPT’ 개발이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소버린 AI는 투입 비용 대비 기대 이익이 크지 않다. 과기정통부는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독자 AI 플랫폼의 성능 목표를 세계 유수 AI 모델의 95%로 제시했다. 국내 기업의 기술만으로 빅테크를 넘어서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정부가 먼저 자인한 것이다. 하정우 수석은 과거 인터뷰에서 소버린 AI 플랫폼을 개발해 해외에 판매하자고 제언했다. 미국 빅테크에 종속되는 것을 꺼리는 중동이나 동남아시아 국가를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들 입장에선 미국과 한국은 오십보백보다. 한국 AI를 고른다고 기술 종속의 우려가 줄어드는 게 아니다. 챗GPT 같은 AI 파운데이션 모델의 가치도 예전만 못하다. 소스 코드가 공개된 오픈소스 AI와 빅테크가 개발한 AI의 성능 차이는 5% 수준이다. 수십억원의 학습 비용으로 빅테크 AI와 비슷한 성능을 구현하는 데 성공한 중국의 딥시크가 기술 평준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소버린 AI가 규제로 변질할 가능성도 우려스럽다. 국가 예산이 많이 투입됐다는 이유로 정부의 지원을 받는 스타트업이나 공공기관에 기능이 떨어지는 토종 AI 사용을 강제하면 한국 AI산업의 갈라파고스화를 부추길 수 있다. 정부 기관에서만 볼 수 있는 한글 워드프로세서나, 공공부문 발주에 목을 매는 토종 클라우드 서비스의 전례가 되풀이되는 것이다.

AI는 기업과 사회의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다. 도구가 국산이면 좋겠지만, 외국산이라고 해서 기능을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빅테크의 AI 기술을 헬스케어·금융 등 특정 산업에 접목한 ‘버티컬 AI’에 집중하고 있다. 독자적인 범용 AI 플랫폼이 없음에도 이 나라의 AI 민간 투자액은 미국과 중국에 이은 세계 3위다. 소버린 AI는 AI 강국으로 가는 여러 징검다리 중 하나일 뿐이다. 기업과 사회의 AI 전환을 독려하고, AI 시대에 걸맞은 교육과 고용 시스템을 갖추는 등 다양한 대책을 병행해야 한다. 기업인이 대거 가세한 ‘AI 내각’이 소버린 AI를 넘어서는 크고 촘촘한 국가 AI 전략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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