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송미령 장관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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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6.24 17:41 수정2025.06.24 17:41 지면A31

[천자칼럼] 송미령 장관의 선택

역대 최장수 장관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이다. 1971년부터 1978년까지 7년6개월이나 자리를 지켰다. 대덕연구단지 설립 등 성과도 많아 두고두고 명장관으로 회자된다. 재직 기간과 업적 못지않게 놀라운 건 소신 행정이다. 저명한 금속공학자인 그는 대통령이 무리한 지시를 내릴 때면 꼬박꼬박 반박하고 설득했다. 박 대통령의 허망한 서거에 “나도 너무했지. 대통령 말을 5%는 따를 걸…”이라며 회한을 토로했을 정도다.

청사에 이름을 남긴 관료의 공통점은 ‘소신’이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선 조치, 후 보고’를 강조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비타협적 안보관으로 ‘참 군인’으로 회자된다. 경제 분야에선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소신이 손꼽힌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재정 건전성을 소홀히 하지 않은 덕분이다.

이재명 정부 첫 조각의 최대 화제는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다. 정권이 교체됐음에도 유임된 사례는 김영삼·김대중 정부 교체기의 이기호 노동부 장관 이후 약 30년 만이다. 윤석열 정부 시절 ‘이재명 민주당’에 그 누구보다 각을 세운 인물이라 더 이례적이다. 윤 정부 시절 그는 양곡법 등 민주당이 밀어붙인 ‘농업 4법’을 ‘농망 4법’이라며 누구보다 선명한 논리와 태도로 반대했다. 하지만 장관 지명 직후엔 “새 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며 말을 바꿨다.

그럼에도 아직 진의는 명확하지 않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장관직을 수락했을까. 장관직을 더 하고 싶은 욕심에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26년 농업전문가로서 사명감의 발로로 해석해 줄 여지가 있다. 가령 농민단체 출신 과격한 장관이 오는 것보다 ‘내가 십자가를 지겠다’는 애국심의 발로일 수 있다. 결이 판이한 이재명 정부에서 건전한 견제세력으로 기능한다면 최고의 그림이다. 장관직을 연명하기 위해 소신을 바꾼 오명의 주인공으로 남을지, 소신을 지키기 위해 호랑이 등에 올라탄 역사적 인물로 기억될지는 송 장관의 선택에 달렸다. 최형섭 전 장관의 어록이 도움이 될 듯하다.“직위에 연연하지 말고 직책에 충실해야 한다.”

백광엽 수석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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