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추진 중인 열요금 체계 개편이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이번 개편안의 골자는 민간사업자가 총괄 원가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한국지역난방공사보다 낮은 요금을 강제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일부 민간사업자의 과도한 수익을 억제하고 소비자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런 접근은 규제의 근본 목적과 철학을 심각히 왜곡하고 있으며 단기적 효과에만 매몰된 근시안적 처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규제의 목적은 단순히 소비자에게 낮은 요금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효율성 증대와 시장 공정성 유지,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 확보에 더 방점이 찍혀 있다. 하지만 이번 개편안은 효율적으로 비용을 절감해 높은 수익을 거둔 민간사업자에게 징벌적 규제를 주고 있다. 효율성 향상을 위한 민간사업자의 유인을 꺾고, 장기적으로 전체 시장의 효율성을 저하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이번 개편안은 단기적으로 일부 소비자의 요금을 소폭 낮추는 효과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비용 상승으로 연결될 것이다. 사업자들이 비용 절감 노력 대신 원가 부풀리기 등 비효율적인 방식을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장기적으로 가장 큰 피해는 집단에너지 사업의 지속 가능성과 안정성에 대한 투자 저하다. 탄소중립과 열 수송관 안전관리 등 장기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업자의 적극적인 투자가 필수적이지만 원가 공개 방식으로 기업들의 투자 유인을 저하시킬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총괄원가 규제 적용의 일관성 결여다. 현재 국내 전력과 가스 분야는 총괄원가 규제를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있지만, 정치적 이유로 실제 원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누적적자가 계속 쌓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용 효율화로 시장 경쟁력을 높인 집단에너지 사업자에게만 총괄원가 규제를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명백한 정책적 자기부정이자 형평성 결여다.
정책 부작용과 관련해 정부 내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다는 것도 있다. 단기적 성과만 강조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동안 담당 공무원 및 정책 책임자는 중장기적 피해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결국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와 기업에 전가되고 사회 전체에 누적된다.
해외 선진국들은 전통적인 총괄원가 규제 방식의 비효율성을 인정하고 점차 인센티브 기반의 혼합형 규제로 전환하고 있다. 규제 철학이 명확한 국가는 독립적인 전문 규제기관을 통해 투명하고 합리적인 원가 검증과 인센티브 제공에 중점을 두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장기적으로 소비자와 사회 전체를 위해 지속 가능한 규제 체계 구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부는 규제의 진정한 목적과 철학을 다시 돌아보고, 장기적인 효율성을 지속할 수 있는 규제 체계를 마련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