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웃] 슬럼프에서 벗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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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 [정연주 제작] 일러스트

[정연주 제작] 일러스트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누구에게나 슬럼프는 온다. 운동이나 공부를 할 때, 심지어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음에도 어느 순간 지겹고, 귀찮고, 의미마저 없어지는 시기가 찾아온다. 야구 선수에게 갑자기 타율이 곤두박질하는 순간이 오고, 소설가에게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날이 이어지며, 평범한 직장인조차 출근길이 두렵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원인을 분석하고 방법을 찾아보지만, 오히려 그 과정이 문제를 꼬이게 한다. 슬럼프란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 투수 존 스몰츠는 1991년 깊은 슬럼프에 빠졌을 때 스포츠 심리학자 도움으로 과거 자신이 완투했던 경기 영상을 반복 시청하며 자신감을 되찾았다고 한다. 특별한 깨달음이나 이론이 아니라, 그저 '그냥 하자'고 마음먹고 다시 시작한 것이다. 대학 운동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슬럼프 극복의 핵심은 "과거에 잘했던 본인의 경기를 다시 보면서 연습하고, 슬럼프에 집착하지 않는 노력"으로 나타났다. 처음엔 억지로 몸을 움직였지만, 조금씩 감각이 돌아오고, 리듬이 살아났다. 몸이 움직이면 감정도 깨어난다. 행동은 의욕의 불씨를 살려낸다.

무기력할 때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다. 우울감이나 무기력함에 빠졌을 때 감정을 바꾸려 하기보다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산책을 하고, 정리를 하고, 책상에 앉아 10분만 집중해보는 식이다. 이는 단순한 정신 집중의 문제가 아니다. 행동이 감정을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이를 심리학에선 '행동 활성화'라고 한다. 슬럼프 상태는 우울증 환자의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다. 작고 단순한 행동의 반복이 뇌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고 의욕을 불러온다. "그냥 하자"는 주문은 삶의 리듬을 회복하는 가장 현실적인 지침이 될 수 있다.

1920년대 스타 소설가인 스콧 피츠제럴드는 대공황 이후 슬럼프에 빠져 복잡한 자기분석과 알코올에 의존하며 창작력을 잃어갔다. 반면 그의 친구였던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어려운 시기에도 단순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꾸준히 글을 썼고,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했다. '피겨 여제' 김연아도 단순함이 갖는 힘을 보여준 바 있다. 한 방송에서 "스트레칭할 때 어떤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무슨 생각을 해요. 그냥 하는 거죠"라고 답했다. 문학이든 스포츠든, 슬럼프 앞에서 복잡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더 깊이 빠져들고, 단순하게 행동하는 이들은 의외로 쉽게 빠져나온다. 어떤 분야든 중간에 포기하는 이들이 다수이고, 끝까지 버텨낸 이들은 소수다. 소수가 살아남을 뿐이다.

무조건적인 버티기를 미화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고통을 이겨내는 방식이다. <언니의 독설> 저자 김미경 강사는 "슬럼프는 내가 만든 꾀병이다. 자기 자신을 믿고 아무 생각 없이 그 일에 매진하게 되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거창한 목표보다 작은 실천으로, 장기 계획보다 당장 해야 할 일을 정하고 지키는 식으로 시작한다. 오늘 하루만 해보자는 마음으로, '그냥 하는' 힘을 훈련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버티고, 이틀을 넘기면 어느새 슬럼프를 지나 새 국면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슬럼프가 찾아왔다면 그냥, 다시 해보자.

jongwoo@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6월25일 06시3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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