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코리아 박영일 기획자 “진화하지 않는 게임은 죽는다…성장 위해 기존 틀 벗어나야”
“저는 팀원이기에 저의 말이 프로젝트를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장을 위해서는 기존 틀을 벗어나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돌파하고 도전했으면 좋겠습니다.”
넥슨코리아에서 ‘카운터스트라이크 온라인’의 기획자로 근무 중인 박영일 개발자는 25일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NDC) 25’에서 ‘카운터스트라이크 온라인 좀비 모드 무기 기획 이야기’ 강연을 통해 진화하지 않는 게임은 자연스럽게 죽어간다며 성장을 위해서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2010년 ‘카운터스트라이크 온라인’ 팀에 합류해 15년간 한 프로젝트에서만 근무한 개발자다. 합류 초기에는 기획자로서 게임의 밸런스를 중시하며 제한적인 성능이 무기만을 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재미’를 주기 위해서는 ‘진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닳았다는 것이 이날 강연의 핵심이다. 특히 변화를 주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상향(인플레이션)이 아닌 재미를 위한 ‘진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에 대한 예로 ‘카운터스트라이크 온라인’에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약 4년간 추가한 9종의 캐시 기관총을 거론했다. 기존 기관총의 특징 때문에 명중과 반동 등 핵심 수치에 극단적인 값을 주지 못했고 성능적인 측면에서도 약 15% 이상 상향하면 오버스펙, 반대로 이하로 상향하면 잘 체감이 되지 않는 문제로 매력적인 총기를 구현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용자들이 기획 의도를 넘어서는 플레이를 보이는 것을 생각이 바뀌었다. 좀비 모드는 기본적으로 ‘사람’ 이용자들은 소위 ‘명당’이라는 구역을 찾아 몰려오는 ‘좀비’ 이용자를 상대하는 구조였던 탓에 ‘사람’은 원거리, ‘좀비’는 근거리라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숙련된 이용자들은 근접 공격으로 ‘좀비’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시작했고 이에 ‘명당’을 벗어나 ‘좀비’를 사냥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반면 ‘좀비’ 이용자도 소위 ‘명당’ 자리를 쉽게 뚫어내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이런 행동을 순환을 이루며 게임의 메타가 변화했다.
그는 “초기에는 밸런스 유지를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진화하지 않는 게임은 자연적으로 죽어간다고 생각했다”라며 “이를 아는 기획자는 의도적으로 상향(인플레이션)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이 부분에서 재미를 위한 진화를 하고 있는가, 어쩔 수 없는 상향을 하고 있는가를 고민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그는 단순히 수치를 높이는 방식이 아니라 이용자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특수 기능을 부여하는 총기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RPG의 스킬 개념을 FPS에 부여한 것이다. 범위 공격이나 군중 제어 등의 기능을 특정 조건을 달성하면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이는 이용자의 숙련도 증가와 좀비 스펙업에 따라 변화를 부여하기 위한 의도였다.
결과적으로 이는 슈팅 경험의 변화로 이어졌다. 일반적인 슈팅 게임은 화면에 ‘점’을 찍는 방식의 공격을 가한다면 특수 기능의 도입은 선과 면을 공격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두 명 이상을 타격하거나 보이지 않는 영역에 대한 예측샷이 가능했고 적의 움직임을 지연시키거나 흔들 수도 있었다.
물론 이런 무기의 제작은 개발 비용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아트나 프로그래밍 측면에서 처리할 부분이 많았고 기획 입장에서도 밸런스 때문에 고민할 거리가 많았다. 특히 12년 간 이런 무기를 추가하다보니 앞으로 선보일 무기에 대한 고민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다만 그는 기존의 틀을 깨고 이를 돌파하면 방법이 있다고 봤다. 지난해 추가한 ‘브류나크’라는 근접 무기의 사례다 대표적이다. 2021년 출시된 ‘흑영쌍부’라는 무기를 대체하기 위해 기획한 무기로 인기 만화 ‘주술회전’의 하나미 소멸 장면을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기획 방향은 강력한 무기인 ‘흑영쌍부’에서 단순하게 수치를 올리기 보다는 새로운 포지션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느리고 복잡하지만 강하고 재미있는 무기다. 그래야 이용자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실제 출시 초기에는 ‘브류나크’가 강하기는 하지만 ‘흑영쌍부’가 더 낫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20일이 지난 이후에는 조감감도 있고 질리지 않고 꽤 재미있다는 긍정적인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이펙트가 너무 화려하고 구현할 기능도 많아 아트나 프로그래밍 팀의 반대가 있었지만 이를 이겨냈다”라며 “누군가는 오버 밸런스로 설계하면 되는 것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산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승차감이 좋은 패밀리 차량과 레이스용 차량은 서로 목적이 다르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가치를 더 빛나게 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초기에는 엄격한 아버지처럼 프로젝트를 제한하려고 했지만 지나고 보니 성장을 위해서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수였다”라며 “각자의 자리에서 돌파하고 도전하는 것에서 배웠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