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이스라엘과 이란이 확전 위기 속에서 극적으로 휴전에 들어갔다. 세계 경제는 패닉에서 벗어났고, 특히 우리처럼 중동 원유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는 천만다행이었다. 양국의 의지라기보다 미국의 압박과 중재가 결정적이었다. 이스라엘의 정밀타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미국이 '심야의 망치'(Midnight Hammer)를 내리치자 예상보다 빨리 중단됐다. 이란은 약속 대련 형식의 반격을 끝으로 과거와 다른 무기력한 모습 속에 사실상 백기 투항했다.
중동은 물론 세계 질서 재구축의 계기로 현대사에 기록될 수 있는 장면이다. '미국에 죽음을'이란 구호를 내건 신정국가의 장기 독재자가 두려움을 못 숨긴 채 순순히 저항 의지를 꺾은 건 이례적이다. 이스라엘의 정밀타격은 가공할 위력이었고 미국이 실전에 처음 사용한 신형 벙커버스터는 충격과 공포를 불렀다. 1989년 호메이니 사망 이후 이란을 이끌어온 알리 하메네이지만 주요 핵시설이 파괴되고 핵심 참모들이 잇달아 표적 제거되는 당혹스러운 상황을 수습하긴 불가능했다. 미국은 새삼 지배력을 입증했고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새 질서 구축에 나설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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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40여년 테러와 전쟁을 벌인 상대였던 이란을 단기간에 굴복시키고 조 바이든 행정부 내내 교착 상태만 거듭해온 중동 핵 위기 해결의 물꼬를 단숨에 튼 건 놀라울 정도다. 중동과 우크라이나에서 바이든 전 대통령이 무능의 극치를 보였다고 비판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 말이 허언이 아님을 보인 셈이다.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를 실제 증명한 사례로, 미 보수 진영에선 로널드 레이건이 힘을 통한 평화를 주창하며 소련과 냉전에서 승리한 데 필적하는 성과로 받아들이는 기류다. 미 여권 내에선 노벨평화상 이야기가 나온다.
힘을 통한 평화가 한 단계 진화한 것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광인 이론(Madman Theory)이 결합한 변주곡이 실제 성공을 거둬서다. 미치광이 전략으로도 일컫는 이 이론은 수사가 아니라 공식 정치외교학 용어다. 리처드 닉슨이 대통령 재임 시절 사용한 대외 전략으로, 자신을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미친 사람으로 보이게 해 억지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언제든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돌아이'처럼 보이게 연기해 소련 등 적국이 선을 못 넘게 했다.
광인 전략의 핵심은 예측 불가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레이건과 닉슨을 합친 듯 더 저돌적이고 예측 불가하다. 중국, 이란, 북한 등이 미국을 상대할 땐 자국처럼 의사결정 구조가 단순한 일당독재 국가나 신정 국가와 달리 미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란 약점을 교묘히 이용했다. 미국은 원칙적으로 전쟁행위에 의회 승인이 필요하며, 여론도 살펴야 한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 승인 없이 공격을 단행했고 신무기를 실험했다. 이란에 2주 시한을 주더니 일부러 이보다 앞서 폭격했다. 하메네이만 빼고 주요 인물들을 표적 제거한 뒤엔 하메네이 들으라고 "은신처 위치를 안다"며 협박도 했다. 테러리스트도 두려워할 미치광이 전략이다.
강의실에서만 떠드는 건 죽은 이론이고 주장은 누구나 해도 실증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구역의 미친X는 나'라는 경구를 떠올리게 했다. 이를 가장 경계할 나라로 북한과 중국 등이 꼽힌다. 북한은 이란처럼 핵 프로그램에 정권의 생존을 걸었고 핵 개발에 협력해왔다. 중국은 '일대일로'의 중동 거점이자 미국 견제를 위한 핵심 파트너의 추락을 목도했다. '신의 대리인'으로 불리는 신정 지도자가 측근들이 하나둘 제거되는 상황에서 속수무책으로 지하 벙커에 숨은 모습이 어떻게 비칠까. 트럼프 대통령은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 없고, 시작하면 끝을 보는 지도자로 각인됐을 것이다.
광인 전략 측면에선 미국인보다 오히려 한국인 유전자에 더 뛰어난 형질이 있는 듯하다. K-광인 전략이랄까. 국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 삼대 세습 정권이 대를 이어 광인 전략을 잘 활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벼랑 끝 전술'은 광인 이론의 변용이다. 북한은 예측 불가성을 위험 요소로 비치게 하며 장기간 도발과 협상을 반복해 정권의 안위를 삼대에 걸쳐 보전하는 전략을 활용함으로써 결국 핵무기를 갖는 데 성공했다.
북에 김씨 정권이 있다면, 남에는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수반이자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이 있다. 김씨 일가보다 '더 미친 전략'을 보여준 세계사에서도 독특한 인물이다. 프린스턴대 정치학 박사인 이승만은 1950년 6·25 전쟁 발발 이후 '미친X'의 모든 걸 보여주며 미국을 활용했다. 해리 트루먼 당시 대통령과 의회는 미군 철수를 고려했으나, 이승만은 공산주의자와 죽을 때까지 싸워 북진하겠다는 극단적 반응으로 마음을 돌렸다. 지친 미국이 1953년 휴전 협상을 주도하며 한반도에서 발을 빼려하자 반공포로를 전격 석방하는 광인 전략으로 미국을 기겁하게 했다. 미국 정가에선 당시 그를 '미친X'로 부르며 기피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반대급부로 이승만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강제로 가져오다시피 했고, 이는 현재 한미동맹의 근간으로 남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최강 리더이니 광인 전략을 쓸 수 있지만, 최약소국 중 하나의 지도자가 미치광이 전략을 활용했던 배포는 범인(凡人)으로선 상상이 잘 안 간다.
lesli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6월25일 14시38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