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워치] 형광등·냅킨 아끼던 SK하이닉스의 1억 성과급

1 month ago 7

이미지 확대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전기료를 아끼려고 사무실의 형광등을 뺐던 회사, 경비 절감을 위해 사내 식당의 반찬을 한가지씩 줄여야 했던 회사, 사내 식당의 냅킨 비용이라도 아껴보자고 '손수건 가지고 다니기 운동'을 했던 회사, 모든 직원이 강제로 무급휴가를 가야 했던 회사, 수석급 이상 직원이 월급 10%를 반납해야 했던 회사, 해외 출장 비용이 없어 회사가 사원들에게 개인 마일리지로 항공권을 끊을 것을 부탁했던 회사.

SK하이닉스의 곽노정 사장은 지난달 SK그룹 내부 행사에서 20여년 전 어려웠던 시기를 회상하며 당시 하이닉스가 이런 회사였다고 설명했다. "지금에서야 이렇게 마치 무용담같이 얘기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암울했고요. 앞이 보이지 않았고 이대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전체 회사를 압도했었습니다." 국내 기업 중 SK하이닉스만큼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기업이 있을까. 국내 경제가 위기를 넘나드는 동안 재계에서도 수많은 기업이 명멸했지만, SK하이닉스만큼 상전벽해(桑田碧海),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례를 찾긴 쉽지 않다.

이 회사는 1949년 설립된 국도건설이 전신이다. 1983년 현대전자산업으로 이름을 바꾼 뒤 1984년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기까지는 끊임없는 변신의 과정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빅딜'(Big deal)로 LG반도체를 합병해 규모를 키웠지만 2000년대 초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채권단의 공동관리(워크아웃)를 받는 처지가 됐다. 현대그룹으로부터 분리하고 반도체 이외의 사업부들을 매각하는 구조조정 이후에도 반도체 공급 과잉, D램 가격 폭락으로 여러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었다.

이미지 확대 SK텔레콤, 하이닉스반도체 지분인수계약

SK텔레콤, 하이닉스반도체 지분인수계약

(서울=연합뉴스) SK텔레콤은 14일 오후 채권단과 하이닉스반도체 경영진이 참석한 가운데 하이닉스반도체 인수를 위한 지분인수계약 조인식을 가졌다. SK텔레콤은 이날 구주 6.4%, 신주 14.7% 등 총 21.1%의 하이닉스반도체 지분인수를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하이닉스반도체 권오철 사장(왼쪽부터), SK텔레콤 하성민 사장, 외환은행 김효상 여신본부 본부장이 지분인수계약 체결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11.11.14 << SK텔레콤>> photo@yna.co.kr

SK그룹의 인수 후에도 어려움이 없진 않았으나 적극적인 투자 지원과 기술 개발로 이뤄낸 최근의 성과와 위상은 놀랄만하다. SK하이닉스의 2분기 매출은 22조2천억원, 영업이익은 9조2천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국내 매출 500대 기업 중 올 상반기 영업이익 규모도 1위다. 어디 실적뿐인가. 글로벌 D램 시장 1위, AI 메모리 3세대 연속 시장 1위, 세계 최초 321단 낸드플래시 양산, 세계 최초 12단 HBM4 샘플 공급, 시가총액 200조원 돌파, 대학생이 일하고 싶은 기업 1위가 SK하이닉스의 현주소다.

SK하이닉스 직원들이 임금교섭 타결에 따라 1인당 약 1억원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노사 합의로 상한을 폐지함으로써 가능하게 된 성과급 1억원은 성과주의 보상체제의 열매인 동시에 그동안 어렵고 힘든 시절을 버티며 최고의 회사로 거듭나는 데 힘을 보탠 직원들에 대한 위로라 할 수 있다. 역사의 세월 속에서 사라진 많은 기업과 달리 SK하이닉스가 미운 오리 새끼에서 백조로 거듭난 비결은 경영학의 연구 과제로 삼을 만하다. 다만 어려운 시절 속에서도 인공지능(AI) 시대를 내다보고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의 선점을 준비한 통찰력과 비전이 큰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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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부스 방문한 젠슨 황

(타이베이=연합뉴스) 강태우 기자 =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5월 20일 오후 아시아 최대 규모 정보기술(IT) 전시회 '컴퓨텍스 2025'에 조성된 SK하이닉스[000660] 부스를 깜짝 방문해 "HBM4(6세대 고대역폭 메모리)를 잘 지원해달라"고 말했다. 기념사진 촬영 중인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SK하이닉스 관계자들. 2025.5.20 [컴퓨텍스 공동취재단] photo@yna.co.kr

지난해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33곳이 교체됐다고 한다. 아무리 우수한 성과를 냈더라도 순식간에 경쟁업체와 우위가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은 업계 1위의 기업이 2·3위 업체와 적당히 시장을 나눠 먹는 시대가 아니라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의 시대다. 내수 부진과 저성장 장기화로 건설과 철강·석유화학 기업들은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고, SK하이닉스를 포함한 국내 반도체 기업들도 미·중의 첨단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살길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다. SK하이닉스의 곽 사장은 "문 닫기 직전까지 갔던 그 경험이 저희를 더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둠을 견디고 어둠 속에서도 뭔가 배우겠다는 자세를 가진다면 반드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지금이야말로 어둠을 견디고 밝은 아침을 맞기 위한 통찰력과 비전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hoonkim@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9월05일 06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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