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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한계'(限界)란 단어는 더 나아가거나 지속할 수 없는 경계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 결코 그 자체로 좋은 느낌을 주는 말은 아니다. 주로 뛰어넘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기업에 이 단어를 붙인 '한계기업'이라는 말은 독자적으로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 기업을 일컫는다. 기업이 생산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최소한 이자는 갚을 수 있어야 채무를 연장하며 존속할 수 있는데, 이자만큼도 벌지 못할 정도로 수익성이 악화됐다면 존속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통상 한계기업은 영업이익을 이자 비용으로 나눈 이자보상비율이 100%를 밑도는 상태가 3년째 지속될 정도로 재무구조가 나빠진 기업을 말한다. 한해 영업이익이 채무에 지급할 이자만큼도 되지 않는 상태다. 더구나 일시적 요인이 아니라 3년이나 이런 상황이 지속됐다면 악화된 재무 상태를 개선하고 돌파할 능력이나 기회를 상실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한국은행의 분석을 보면 작년 말 전체 외부감사 대상기업 중 한계기업이 차지하는 비중(기업수 기준)이 17.1%로 1년 전보다 0.7%포인트(p) 늘었다. 이 비중은 201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계기업 중에서도 3년째 매출 증가율이 0% 미만이거나 부채비율이 같은 업종보다 높은 고위험 한계기업의 비중도 커졌다. 작년 한 해만 보면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기업은 40.9%로 전년(39.0%)보다 1.9%포인트 증가했다. 기업 10곳 중 4곳이 한해 이자 비용만큼도 영업이익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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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원형민 기자 =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외부감사 기업 중에서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을 밑돈 한계기업 비중은 17.1%로, 1년 전보다 0.7%포인트(p)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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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기업은 원칙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맞지만 채권단 지원 등 여러 방법으로 연명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존속하는 한계기업이 늘수록 우리 경제엔 부담이 될 뿐이다. 유한한 자금지원이 한계기업으로 흘러가면 그만큼 정상기업의 자금조달이 막히거나 부족해지고, 한계기업이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 금융회사의 부실이 늘어난다. 이런 식으로 금융회사의 부실이 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앞서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 경험한 바 있다.
내부와 외부의 겹악재에 둘러싸인 우리 경제는 올해 0%대 성장이 예상될 정도로 어려운 여건에 놓여있다. 장기간의 소비심리 위축으로 경기 부진이 지속되고 투자와 채용은 얼어붙었으며 전 세계를 뒤흔든 미국의 관세 충격으로 수출이 휘청거리고 있다. 졸업 후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층의 고용 절벽은 해결될 기미가 없고 저출산 고령화로 노인 인구만 늘어가니 산업현장의 생산활동은 활력을 잃어간다. 건설업계에선 기업의 줄도산이 이어지고 있는데 석유화학에 이어 다음엔 어느 업종이 구조조정의 타깃이 될지 불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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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동해 기자 =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에서 다섯번째)과 국내 석유화학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석유화학업계 사업재편 자율협약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5.8.20 eastsea@yna.co.kr
기업활동으로 이익을 내지 못하고 생존 능력을 상실한 한계기업은 조속히 정리하는 것이 맞다. 한계기업 정리가 늦어질수록 한정된 자원 배분에서 비효율이 발생해 정상기업과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지원을 통해 회생할 수 있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을 정확히 판별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이 이런 한계상황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통해 수익성과 성장성을 확보하는 것은 기업의 몫이지만, 기업이 투자와 채용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도록 규제를 풀어주고 지원해야 한계기업이 늘어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hoonkim@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10월01일 07시11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