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워치] 노동계 인사가 기준금리를 결정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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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총재, 금통위 주재

(서울=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1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2025.7.10 [사진공동취재단]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책무는 '물가 안정'과 '완전 고용'이다. 어찌 보면 서로 상충할 수도 있는 2가지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입장에선 연간 8차례의 기준금리 결정이 딜레마의 연속이다. 물가 안정은 금리 인상, 완전 고용은 금리 인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연준을 장악해 금리를 내리게 하려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인 노동계 인사를 연준 이사로 지명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참여하게 했다고 가정해보자. 노동계 출신 연준 이사는 노동계의 염원이자 연준의 목표이기도 한 완전 고용을 달성하고자 금리 인하를 줄기차게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연준을 장악해 금리를 계속 내리기만 한다면 미국 경제는 아마 인플레이션의 늪에서 허덕이며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미지 확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준 의장.[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준 의장.[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연준의 FOMC처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도 7명의 위원들로 구성된 금융통화위원회가 결정한다. 한은 홈페이지의 설명을 보면 금통위는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정책 결정 기구로서, 한국은행 총재 및 부총재를 포함해 총 7인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금통위에는 한은 총재와 부총재가 참여하고 기획재정부 장관과 한은 총재, 금융위원장, 대한상의 회장, 은행연합회장이 추천하는 인사를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런데 역대 금통위원을 보면 5개 기관장이 추천한 인사들은 해당 기관의 출신이거나 해당 기관의 이해를 대변하는 인물들이 아니다. 금통위는 거시경제 전반에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국가경제 전반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통화신용정책을 결정하는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다. 결과적으론 경제나 금융 관료, 거시경제 교수, 학자 등이 선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재부 장관 추천 몫의 금통위원이 정부 측 입장을 대변하거나 대한상의 추천을 받은 금통위원이 기업 입장을 옹호하지 않는다. 은행연합회 추천 몫의 금통위원이 은행에 유리한 결정을 내린다면 대번에 문제가 될 것임은 자명하다.

한은 금통위에 노동계 입장을 대변하는 위원을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한은법 개정안을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고 한다. 금통위에 참여하는 7인 중 한은 부총재를 빼고 '노동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하는 위원 1명'을 넣자는 것이다. "중요한 금융 소비자인 서민들, 특히 노동계 의견도 정책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전 의원의 취지를 전적으로 부인하긴 어렵다. 전에도 금통위에 여러 직역을 대표하는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노동계와 소비자단체 대표가 추천하는 인사가 포함돼야 한다는 법안이 제기된 적도 있다. 심지어 한은 내부에서도 수출이나 무역, 기업경영, 노동, 금융,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춘 인사들의 목소리가 신속·정확하게 반영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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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본부

[촬영 이세원]

현재의 금통위 구성 방안과 제도가 최선책이어서 수정 불가한 것은 아닐 것이니 개선의 필요성이 있다면 논의와 법 개정 등의 절차를 거쳐 반영하면 될 일이다. 다만 이는 금통위의 통화신용정책 논의구조 자체를 완전히 바꿔야 하는 작업이므로 광범위한 의견수렴과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거시 경제 전반에 걸친 깊이 있는 전문성은 물론, 특정 이해관계에 치우치지 않는 통화신용정책 결정의 독립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이 반드시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니 단순히 금통위에 노동계 인사만을 참여시키는 개편은 오히려 금통위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떨어뜨려 '산으로 가는' 통화정책을 양산할 우려가 있다.

차제에 한은이 각계각층의 다양한 요구 사항이나 우리 경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 결정에 참고할 수 있는 자문위 구성 등의 제도적 장치를 검토해볼 것을 제안한다. 직접적인 금통위 참여까진 아닐지라도 금통위원들에게 딱딱한 숫자로만 이뤄진 경제지표에선 찾아볼 수 없는 현장의 발 빠른 동향과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한은이 '고요한 한은사(寺)'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의 다양한 현안에 목소리를 내는 싱크탱크로서의 '오지랖'을 부리기로 작정했다면, 역으로 한은 내부에 대해 지적하는 외부의 '오지랖' 목소리에도 귀를 여는 게 맞지 않을까.

hoonkim@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8월27일 15시53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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