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시선] 비판 경계성 장애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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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의 시선] 비판 경계성 장애 사회

‘코미디언(comedian)’을 가장 훌륭한 직업이라고 생각해왔다. 개그맨(개그우먼) 말이다. 그들의 재능과 노력에 감탄해서만이 아니다. 고통의 바다인 인생에서 ‘웃음’보다 소중한 건 없는 까닭이다. 한국사회가 총기규제가 필요한 사회보다 내면적으로는 더 폭력적이며 한국인은 특히 스스로 극히 불행하기 때문이다. 이런 난관들을 뚫고 웃음을 전하는 프로페셔널은 고귀하다.

얼마 전이었다. 출판계 중견 편집자가 동영상 콘텐츠 하나를 내게 공유해주었다. 개그우먼들이 주요 출연자인 그 내용은 대강 이렇다. ‘블링블링, 분홍분홍한’ SNS 인플루언서 작가가 자신의 북토크 행사 중이다. 책 제목 역시 블링블링, 분홍분홍하기 그지없다. 유치찬란한 질문과 답변을 팬(독자)들과 진지하게 주고받는 가운데 괴이하되 말은 똑바로 해서 더 웃긴 한 관객이 뇌(腦)가 새하얀 작가에게 시비를 걸어 뭔가 4차원적인 난장판으로 끝이 난다.

내 감상을 기다리는 출판인에게 내가 말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이 따로 없네.” 우리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현실을 비판하는 예술이라는 뜻을 내 깐에는 익살스럽게 표현한 거였지만 적어도 그 동영상 콘텐츠는 뛰어난 ‘세태풍자극’이 맞았다. “요즘 책 만드는 사람들, 저거 보고 ‘현타’와요.” 출판인이 침묵을 깨며 제 속마음을 털어놨다. 오늘날 아무리 저항한들 어느 정도 이상은 종속될 수밖에는 없는 출판인들의 ‘벌거벗은 임금님 상황’을 토로하고 있었다. 기실 양질이 아닌 문화상품이 시장을 ‘지나치게’ 장악하는 일은 어느 시대에나 ‘다양하게’ 있어왔다.

유행하다가 사라질 것은 언제고 사라지고 남을 것은 기어코 남는다. 심지어 그 본질인 ‘문학’ 자체가 사라진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다만, 나는 그 동영상 콘텐츠를 보고 난 뒤 묘한 가책에 편치 않았다. 출판계가 스스로를 비판하지 못한 채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들로부터 저렇듯 신랄하게 풍자 당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내게 그 동영상 콘텐츠를 공유한 뒤 전화를 걸어온 출판계 편집인의 수줍은 우울도 결국은 그런 거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런 건 작은 비유(比喩)의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는 비리와 악행과 방관을 일삼으면서, 이득과 편의만을 챙기면서, 사회와 정치와 환경과 우주평화에 대해서는 열을 올리며 정의(justice)의 용사로 돌변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심정이 복잡해진다. 진보적이지 않은 사람의 이런 진보 행세는 자신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타인에 대한 적개심으로 요약된다. 특히 386들이 자각해야 할 점은 진보는 분위기가 아니라 실체라는 상식이다. 맛을 잃은 소금은 모래알에 불과하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불이 붙지 않는 양초는 고드름보다 못하다. 차라리 쓸모없음에서 그치면 좋을 텐데 ‘뻔뻔한’ 괴물세대는 곤란하다.

진보-이 진보라는 것도 부검(剖檢)을 받아봐야겠지만-는 당장의 살아 있는 실존이지 영구적 계급이 아니다. ‘변화’가 진리다. ‘진보(progress)’는 있던 자리(세대, 집단 등)가 더러워지면 그들에게서 떠나버린다. 친일파를 그렇게 증오한다면서 제 문학집단의 거두(巨頭)가 어마어마한 친일파 갑부 집안이라는 건 아는지 ‘일부러’ 모르는지 입도 뻥끗 안 한다. 중국은 외세로 보지도 않고, 민주화 투사라면서 북한의 강제수용소는 괜찮거나 무관심이다. 자신들의 신념(?)을 현대사의 모든 시기, 인물 모두에게 적용하지도 않는다. 이런 ‘선택되어 편집된 정의로움’의 사례는 끝이 없다.

무분별한 증오보다 더 사악한 것이 ‘무분별한 존경’이다. 그런 증오와 그런 존경에 대중은 ‘즐거운 노예’가 된다. 자신이 속한 분야와 정치에서의 이중행태, 이중생활. 이것은 진영논리나 내로남불과는 또 다른 정신병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을 대중파시즘적으로 개작하면, 소년이 “저 임금님은 벌거벗었다!”라고 소리치자, 자신이 동조화된 무리의 경향과 이기심에 따라 그 소년마저 죽여버리는 사회일 것이다. “죄 없는 자는 이 여인을 돌로 쳐라.”고 하면 정말 돌로 치는 사회에 우리가 있다. 이 나라의 위기는 ‘대부분’ 정치에서 오고, 우리가 ‘매번’ 정치적 위기에 처하게 되는 근본원인은 바로 이런 우리의 모습에 있다. 개그맨이 웃겨준다고 웃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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