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창의와 혁신] 〈64〉소버린 AI, 조선백자에 길이 있다 (상)

2 weeks ago 6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

'마징가제트'는 1970년대에 누구나 좋아했던 만화영화다. 언젠가 한일 축구대항전에서 우리 응원단이 '마징가제트'의 주제가를 불렀다.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주먹, 인조인간 로보트 마징가 제트”로 시작되는 바로 그 노래다. 일본 응원단에선 충격을 받았는지 정적이 흐르더니 곧바로 유창한 일본말로 마징가제트 주제가를 따라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마징가제트는 일본문화를 배척하던 시절에 미국 등을 경유해 들어온 일본 만화영화였다. 일본을 이기자고 부른 응원가가 그들의 만화영화 주제가였으니 부끄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뒤 우리는 마징가제트에 버금가는 한국형 로봇 만화영화 '로봇태권브이'를 내놨고 대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로봇태권브이의 외모와 작동방식이 마징가제트와 비슷하다는 표절 의혹이 일었다. 법원은 마징가제트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래도 외관상 차이가 있고 한국의 태권도 문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전혀 다른 저작물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끝내 내칠 수 없는 찜찜함은 우리 가슴에 남아 있다.

그림작가 이소연 作그림작가 이소연 作

외국이 만든 인공지능(AI)반도체, 소프트웨어(SW), 장비와 생성형 AI에 전적으로 의존하면 경제종속을 넘어 한국의 정체성을 잃을 수 있다. 그래서 정부는 '소버린 AI'를 실현하겠다고 한다. 세계 3대 AI강국을 목표로 100조원을 투자한다. 100조원이라는 숫자는 이제까지 그래왔듯 어떻게든 맞출 수 있다. 투자의 실질 성과는 어떻게 만들 생각일까. 마징가제트와 비슷한 로봇태권브이를 만든 것처럼 챗GPT, 딥시크 등 외국의 생성형 AI 모델을 답습해 한국적 색깔을 두툼하게 입히면 될까. 나만의 시장을 찾을 수 있는 산업화시대는 지났다. 디지털시대엔 온라인으로 연결된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어 싸운다. 모방만 하다간 성과를 낼 수 없다.

소버린 AI는 도대체 뭘까. 국가의 정치형태와 구조, 의사결정에 대한 최종 권한이 주권이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것이 국민주권이다. 헌법은 국민이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 공직 선거권 등 다양한 자유와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보장함으로써 국민주권을 지킨다. AI는 우리가 미래 경제와 시장을 만들어 생존하고 도약하기 위한 필수 기술이다. 국가의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될 AI 제품과 서비스를 국가가 직접 공급하거나 조달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외국의 AI 제품과 서비스에 구조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 국내에서도 특정 집단이 AI를 독점하게 내버려 둘 수 없다. AI 공급 및 조달능력을 지속적으로 확보, 증진하기 위해 공공과 민간의 역량을 끊임없이 강화해야 한다. 그것이 소버린 AI다.

외국이 앞서가는 생성형 AI 등 선진 AI모델을 답습하면 소버린 AI를 달성할 수 있을까. 시장이 국가별로 나눠진 곳이 있다면 지금도 그런 전략이 가능하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연결돼 하나의 시장에서 모두가 경쟁하는 요즘엔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전략이 아니다. 우리의 장점을 찾아 글로벌 AI 생태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위치를 점하는 것이 우선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 옛날 선조의 열정이 담긴 조선백자에서 소버린 AI의 성공가능성을 찾고 배우면 어떨까. 고려시대 말기엔 귀족의 수탈과 외적의 침략으로 고려청자 등 도자기에 대한 체계적인 품질관리가 어려웠다. 신흥 무인세력과 사대부가 등장하면서 조선을 건국했고 귀족의 화려함보다 선비의 검소함이 강조됐다. 선비의 청렴함, 순수함, 넉넉함, 간결함, 꼿꼿함, 온화함, 진실함을 드러내기에 청자보다 백자가 제격이었다. 백자 제작을 위해 장인을 발굴해 적극 우대했다. 우리의 기후와 지형에 적합한 터를 찾아 가마를 만들었다. 가마의 온도를 높이고 열을 유지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중국기술에서 시작했지만 허겁지겁 따라가지 않고 우리를 드러내는 백자를 만들었다. 왕과 조정에서 백자 사용을 솔선수범하는 등 공공에서 수요를 창출하고 민간으로 확대했다. 소버린 AI도 당연히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