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은 달러, 원화와 같은 법정화폐에 가치를 연동한 블록체인 기반 화폐다. 비트코인은 가격이 올라도 가격 변동성이 커서 화폐로 쓰이지 않는다. 스테이블코인은 가격이 안정적이어서 화폐로 활용할 수 있다. 송금이 빠르고 수수료가 낮다는 장점도 있다. 대표적 달러 스테이블코인 테더의 발행량은 1000억달러를 넘었으며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법안인 지니어스법을 통과시켰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한 나라의 통화주권을 흔들 수 있다고 한다. 통화주권을 잃는다는 것은 자국 화폐가 지급과 가격 표시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는 상황을 뜻한다. 법정화폐가 버젓이 있음에도 국민이 달러를 쓰는 현상이다. 이를 달러라이제이션이라고 하는데 튀르키예 나이지리아 등에서 벌어지고 있다.
국가는 왜 통화주권을 잃을까. 앞서 언급한 국가의 화폐에는 공통점이 있다. 높은 인플레이션, 불안정한 금융시장이다. 통화 가치가 인플레이션으로 빠르게 하락하면 국민은 자국 화폐를 신뢰하지 않고 달러를 선택하게 된다.
통화주권은 국가의 통화정책에 달려 있다. 안정적 통화정책으로 물가를 안정시키고 금융 안정성을 확보해야 국민이 자국 통화를 신뢰하고 통화주권을 지킬 수 있다. 아무리 달러가 강해도 안정적 법정화폐를 가진 나라의 자국 통화를 대체할 수 없다.
통화주권을 잃는 이유는 스테이블코인이 없어서가 아니다. 스테이블코인은 매개체이고 촉진제일 뿐이다. 달러라이제이션은 스테이블코인 이전부터 있어 왔다. 베네수엘라 국민이 달러를 선호하는 이유도 스테이블코인을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안정적이고 유통성이 뛰어난 달러를 원하기 때문이다. 유로화 스테이블코인이 잘 쓰이지 않는 것도 달러가 아니기 때문이다.
통화주권이 블록체인 기술에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달러의 힘에 무너지는 것은 엘살바도르의 예에서 알 수 있다. 엘살바도르는 2021년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선언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국민은 달러 지폐를 선호했다. 자국 통화도, 블록체인 화폐도 아니라 달러 ‘지폐’를 원하는 것이다. 통화주권은 자국 통화의 안정성에 달려 있는 것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분명 혁신의 잠재력이 있으나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통화주권 위협을 막을 수는 없다. 그 위협은 스테이블코인이 아니라 달러의 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에서도 미군부대 등을 통해 달러가 암암리에 통용되곤 했다. 통화가치가 안정적이지 않았으니 달러를 선호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일각에서는 달러 스테이블코인 확산으로 달러 사용이 만연하지 않겠냐고 우려한다.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화폐는 법적으로 강제되는 측면도 있지만 국민의 선택과 수요에 기반한다. 안정적 자국 화폐 시스템에서 달러가 널리 쓰일 이유는 없다. 통화주권과 스테이블코인의 문제는 튼실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있는 나라에서는 별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금융의 대세다. 기존 결제시장에 경쟁을 촉진해 효율성 향상을 이끌어낼 수 있다.
한국은행의 역할은 이제 더 중요하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될 경우 물가 안정이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한국은행의 공개시장조작을 통한 통화정책을 제약할 수 있다. 과도한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통화정책의 효과를 약화시키고 역설적으로 통화주권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정부도 스테이블코인 도입의 경제적 함의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미국처럼 채권 수요 증진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 수요가 적은 원화의 경우 스테이블코인은 오히려 구축효과를 낳을 수 있다. 채권 수요는 늘 가능성이 있어도 민간 대출은 줄어 신용 창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엇보다 주조차익 수입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로 넘어가 정부 재정 수입 감소로 직결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결제시장과 블록체인 생태계에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동시에 통화·재정정책과 국가 경제에 복합적 함의를 지닌다. 물가관리, 정부수입, 민간대출 등 거시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진지한 고민과 폭넓은 토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