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체부 장관 인사청문회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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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8.01 14:52 수정2025.08.01 14:52

정일훈 우송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기고] 문체부 장관 인사청문회에 대한 단상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유심히 지켜봤다. 나는 30년 넘게 문화·콘텐츠 업계에 몸담아왔기 때문에 당연히 관심이 많았고, 장관 후보자가 낯선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최초의 관광 분야 출신 장관 후보자’라는 생경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각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기대도 있었기 때문에 유독 관심이 갔다.

문화계 원로들 사이에선 기업인 출신, 그것도 관광 산업 종사자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데 대한 우려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새 대통령의 안목을 믿고 싶었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확장될 시야를 기대했다.

야당은 자녀 취업 문제를 쟁점화하려 했지만 “소정(所定)의 절차”를 둘러싼 말실수 해프닝만 남았다. 그러나 정작 야당도, 언론도 후보자의 ‘문화관’에 대한 지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의 이런 졸필도 약간의 의미를 가질 수 있으리라는 용기를 내본다. 이 글은 최근 취임한 최휘영 장관에 대한 '비토'가 아닌, 문화에 대한 나의 신념을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다.

최 장관은 일성으로 ‘K컬처 시장 300조원 달성’을 제시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것의 가치를 직관적으로 표현하려 노력하다 나온 계량화라고 짐작하지만, 이것은 옳지 않다. 문화의 본질을 어떻게 시장의 크기로 표현할 수 있을까. 반대로 현 정부에서 바라보는 대한민국 문화의 가치는 총 300조원 정도면 적당한 것일까. 정부의 역할은 기업과 다르다. 기업은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라면 정부는 국민의 세금을 쓰는 곳이다. 그 행위의 정당한 반대급부는 공공의 이익이어야 하며 마땅히 우리 국민이 얻게 될 ‘가치’를 명확히 인지하고 그것을 공감시킬 수 있어야 한다. ‘막연한 시장 규모’가 아니고 말이다.

최 장관은 “문화가 곧 경제이자 국가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화는 경제와 교차하되, 경제에 종속돼선 안 된다. 문화를 자본의 하부구조 중 하나로 보는 순간 “돈이 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논리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을 가진 분이 국가 문화 정책의 책임자가 됐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문화가 국가 경쟁력의 한 요소일 수는 있다. 그러나 문화의 역할이 국가 경쟁력의 제고라는 관점은 진실의 호도다. ‘소프트파워’는 조지프 나이가 제안한 개념인데, 이는 문화의 특질 중 한 단면을 표현한 것이다. 문화가 반드시 국가 경쟁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본질에서 벗어난 말이다. 그렇다면 국가 경쟁력이 190등인 어떤 나라의 문화는 전 세계 문화 중 190위일까. 문화를 경쟁 대상으로 보는 관점은 문화 간 우열을 전제로 하며 이는 1970년대 허버트 실러가 처음 비판한 이래 지난 수십 년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 온 문화제국주의 시각의 잔재다. 그 극복의 가장 극적인 사례가 아이러니하게도 'K컬처'다.

오늘날 K컬처의 확산은 한국 문화의 ‘우월성’ 때문인가. 빌보드 차트에서 상위권에 오른 음악을 갖고 있다고 해서 다른 나라의 음악을 ‘유치하다’든가, ‘야만적’이라고 비하해도 괜찮을까. 그렇게 우열을 정하는 태도로 해당 문화를 삶의 기반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우리 문화를 소비하고 돈을 내라”고 말하자는 것인가.

‘문화가 곧 국가 경쟁력’이라는 수사는 다른 분야에서 문화계가 이룬 성취를 치하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말일지언정 문화계 내부에서 스스로를 자랑하며 할 이야기는 아니다. 이는 자칫 우리 자신에게 문화적 우월성을 부여하고, 다른 나라의 문화를 경쟁 상대로 바라보며 문화 간 경쟁에서 승리하려는 태도로 오해받을 수 있다. 문화는 승부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조건이어야 한다.

장관의 언사 중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김구 선생의 ‘문화의 힘’을 최근 한국 문화의 성취로 설명하려 한 점이다. 장관은 백범의 말씀을 인용했지만 정작 백범일지는 읽어보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백범은 ‘문화의 힘으로 부강한 국가를 건설하라!’고 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백범일지』에는 정확히 이렇게 적혀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한없이 아름다운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지고, 인류의 문화와 평화에 이바지하는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누구나 자신의 시각과 신념이 있고, 추구하는 바가 있다.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나만의 정당성을 세우자고 타인의 신념과 철학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백범이 바란 ‘문화의 세기’가 오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김구 선생이 말한 그 시대의 가치는 경쟁을 통한 확장이나 자본의 성취가 아니라, 인간을 향한 존엄과 공존의 힘이었다. K컬처의 진정한 성취는 특정 국가의 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한때 ‘마이너리티’라고 무시됐던 문화가 확산하고, 교류하며 평등한 문화의 힘을 증명한 데 있다.

새 정부의 문화 정책의 방향이 국경을 넘어 사람과 문화의 가치, 문화생태와 문화 다양성을 중심에 둘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대한민국이 21세기 글로벌 문화민주주의를 선도하는 국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모습일 때 김구 선생도 미소를 지어 보여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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