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관세 15%는 또 다른 시험대…경제·산업 체질 개선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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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 간 관세 및 무역 협상이 어제 타결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25% 상호관세 부과 시점을 하루 남겨두고 전격 합의에 이르렀다. 큰 합의 내용을 보면 상호관세율 및 차 관세율 15%, 대미투자펀드 3500억달러, 반도체·의약품 관세 최혜국 대우, 쌀·소고기 시장 현행 유지 등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촉박한 기간과 녹록지 않은 여건이었지만 정부는 오직 국익을 최우선으로 협상에 임했으며 이번 협상으로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앴다”고 밝혔다.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는 이 대통령 평가처럼 이번 협상은 경제계와 산업계 기대치에 대체로 부합하고 최악의 결과를 피했다는 점에서 정부 협상단과 주요 기업 총수들의 노고를 격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당초 무관세였던 미국 시장에 최소 15%의 관세장벽이 새로 만들어졌다는 점은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대미 최대 수출품목인 자동차 관세율이 당초 타결목표선인 12.5%를 넘어 15%에 이른 것은 적잖게 아쉬운 대목이다. 자동차뿐 아니라 다른 상품에서도 한·미 FTA 무력화 충격이 상당할 전망이다. 15%의 관세를 우리 기업이 미국 거래처나 소비자에게 모두 전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 현지 기업과의 경쟁이 치열하고 소비자들의 가격 민감도도 높기 때문이다. 결국 가격을 올리더라도 최소한에 그쳐야 할 상황이어서 국내 기업들의 수익력 약화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상장기업의 영업이익률이 4~8% 수준이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15% 관세가 얼마나 큰 수치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결국 기업 단위에선 비용 절감과 경영 효율화, 산업 단위에선 고강도 사업재편이나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내외 시장에서 중국 제조업의 거센 추격과 공세를 따돌리면서 한국 주력산업을 첨단화·고도화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잘만 하면 위기를 기회로 바꾼, 또 하나의 K성장 스토리를 써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환경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표방하며 규제 혁파를 강조하고 있지만 나날이 기업들을 옥죄는 국회 입법 여건을 돌아보면 완전히 거꾸로다. 획일적인 주 52시간제가 여전한 가운데, 하청기업 근로자가 원청기업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고 파업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시행 일보 직전이다. 소액주주 이익을 위해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2차 상법 개정안도 대기하고 있다. 법인세율을 1%포인트 높이는 세제개편안까지 발표됐다.

우리가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486조원)의 펀드도 마련할 길이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국내 투자와 고용 지표들이 악화된 가운데 국내 투자재원을 모조리 미국에 투입하는 데 따른 부작용과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한국이 강점을 지닌 조선산업에 1500억달러의 펀드가 배정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3500억달러라는 금액 자체도 너무 크다. 코스피 200대 기업의 사내 유보금(2023년 말 1079조원)의 45%에 달해 민간기업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규모다. 국책금융기관 보증과 금융회사 대출을 기업 직접투자보다 더 크게 하겠다고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투자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펀드는 다수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집행하는 특성상 중도에 멈추면 기존 투자금을 모두 날려버릴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펀드는 미국이 소유하고 통제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자금을 미국 당국이 일방적으로 투자처를 지정하고 배분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우리 산업계의 이익을 지켜낼 수 있는 정부의 추가 교섭력과 치밀한 상황 관리가 중요하다.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는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철강 등에 이미 엄청난 규모로 진행돼 있고 앞으로도 더 필요한 상태다. 이런 투자가 미국 제조업 인프라와 고용 확대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미국도 인정하고 이해할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이런 호혜성을 바탕으로 한국의 성장동력을 보호하고 국부를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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