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마그리트가 그린 ‘이미지의 배반’(1929년·사진)은 사물과 이미지, 단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사물의 이미지를 사물 자체로 동일시하는 우리의 관습에 도전장을 내민다. 실제로 이 그림은 파이프 그 자체가 아니라 파이프를 그린 이미지일 뿐이다. 지금은 마그리트의 대표작이자 초현실주의 미술의 걸작으로 칭송받지만, 이 작품은 처음 발표된 후 수십 년간 마그리트의 경력을 꺾은 실패작으로 여겨졌다.
1929년, 30세의 마그리트는 벨기에 브뤼셀의 한 갤러리와 3년의 계약을 맺었다. 그 덕에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고, ‘이미지의 배반’을 그렸다. 이전에는 광고 포스터를 제작해 생활비를 벌고 있었다. 이 그림은 완성 직후 초현실주의 예술가들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반면 대중은 외면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전시회를 가졌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에 갤러리는 마그리트와의 계약을 끝내버렸고, 마그리트는 생계를 위해 다시 광고계로 돌아가야 했다.
이 그림이 빛을 본 건 작품이 제작된 지 28년이 지난 후였다. 1957년 초현실주의의 후원자 윌리엄 코플리가 작품을 구매하면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코플리가 1978년 경매에 출품한 이 그림을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이 11만5000달러에 사들이며 마그리트의 그림 가치를 증명해 보였다.이미지는 실재와 다르다. 이미지를 보고 사물이나 사람의 본질을 판단할 수는 없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이미지와 실재의 차이를 망각하는 순간 이미지에 배신당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넘어 본질을 보라고, 무엇이 진짜인지 질문하라고 권한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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