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를 함께한 음식이 냉장고에 남아 있습니다. 고향집에서 건너온 밤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걸 구워 먹으려고 굽기 전에 칼집을 내다 [보늬]라는 낱말이 떠올랐습니다. 밤이나 도토리 따위의 속껍질을 뜻하는 보늬. 딱딱하고 질긴 겉껍질에 견줘 보늬는 얇고 연합니다. 밤껍질을 까다 지치면 보늬는 다 벗기지 못한 채 알맹이랑 함께 먹고 맙니다. 약간 텁텁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먹는 맛이 있으니까요.
보늬처럼 표준어 중 '늬'로 끝나는 단어는 보늬를 포함하여 네 개밖에 없다는 사실도 기억할 만합니다. 가나다 순으로 무늬, 보늬, 오늬, 하늬입니다. 무늬는 우리가 물방울 무늬 할 때 쓰는 그 무늬가 맞습니다. [오늬]는 활시위에 끼도록 에어 낸 화살 부분을 이르고요. [하늬]는 서쪽에서 부는 바람을 의미합니다. 하늬는 곧 서풍이며 하늬바람입니다. 백우진은 책 『단어의 사연들』에서 이들 네 단어를 설명하며 "나는 '늬'가 단어에 섬세한 느낌을 주는 접미사로 본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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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표준국어대사전 캡처
서풍을 하늬바람이라고 한다면 동, 남, 북풍은 각각 우리말로 뭐라고 할까요. 동풍은 샛바람입니다. 남풍은 마파람 또는 앞바람이라 하고요. 북풍은 된바람 또는 뒤바람이라고 합니다. 이제 계절과 함께 바람 이름을 익힙니다. 봄에는 샛바람 불고 여름에는 마파람(앞바람) 불고 가을에는 하늬바람 불고 겨울에는 된바람(뒤바람) 분다고요. 북풍(겨울)을 12시 기준점 삼아 시곗바늘 도는 방향으로 3시 동풍(봄), 6시 남풍(여름), 9시 서풍(가을) 하고 외우면 오래 기억할 수 있습니다. 동네마다 앞산을 남산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남풍이 앞바람이자 마파람(맞바람)인 이유입니다. 외우는 요령, 덤입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백우진, 『단어의 사연들』, ㈜웨일북, 2019 (성남시 전자도서관, 제공처 YES24)
2. 이상권, 『무지 어려운 우리말겨루기 365 言편』, 북마크, 2017
3. 경향신문 기획·연재 속담말ㅆ·미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입력 2019.07.15 20:51 수정 2019.07.15 20:52)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 https://www.khan.co.kr/article/201907152051005
4. 표준국어대사전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10월14일 05시55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