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에서 법고창신 정신을

1 month ago 10

[몽테스키외는 삼권분립을 말한다. 입법, 행정, 사법부 권력을 어느 한 세력이 행사하면 안 된다고. 세 권부의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고. 그래야 민주공화정이 건강하다고.]

몽테스키외 이론이 심심찮게 소비됩니다. 사법부를 엄호하는 근거로요. 영국 명예혁명(1688) 이듬해에 태어난 옛날 옛적 한 프랑스인 사상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뭘까요? 맞는 말일 가능성이 커서일 겁니다. 작금의 정세와 무관한, 정상적인 상황하의 정부 운영 원리라는 측면에서요. 지금 봐선 별것 아닌 이론입니다. 너무 당연하게 들려 공허할 지경이지요. 삼권분립론을 전개한 『법의 정신』(De l'esprit des lois. 1748)이 출판한 지 2년도 못 돼 22판을 찍을 정도로 인기를 끈 사실을 알면 생각이 살짝 달라집니다. 당시에는 뻔하지 않았다는 것이니까요. 1751년 금서로 묶인 것도 주목할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책은 명저 반열에 오를 것을 그렇게 예비했지만 잘 짜인 학술서는 아니라는 게 학계의 평가임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이미지 확대 법의여신상(변호사회관)

법의여신상(변호사회관)

[촬영 안 철 수]

포도주로 유명한 보르도 지방에서 금수저로 난 몽테스키외는 큰아버지의 보르도 고등법원 법원장직을 세습합니다. 책에 따라서는 평정관이나 의장으로 표현하는 그 자리는 명예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법률가이기도 했던 그가 삼권분립 외에 어떤 주장을 했는지 살펴봅니다. 몽테스키외는 전문 법관들에게 비판적이었습니다. 1721년 익명으로 낸 『페르시아인의 편지』(Lettres persanes)에서 자기들은 오판이라는 걸 절대 모른다고 자평하던 판사들을 조롱했다고 합니다. "판결은 명백히 정해져 있는 법률 조문에 불과할 정도로 일정해야 한다. 만약 판결이 한 재판관의 개인적 견해라면 사람들은 책임져야 할 의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사법권은 이를테면 없음이나 다름없다. (…) 인민의 재판관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법의 문구를 선언하는 입에 불과하다"라는 『법의 정신』의 언명은 인상적이고요.

법관만 견제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 아테네의 추첨민주주의를 지지하며 뽑힌 대표자(요즘으로 보면 정치인이나 공직자이겠지요)를 재판관들이 심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적합하지 않다고 보면 고발하거나 탄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당쟁을 유익하다고 보고 권력은 권력으로 제어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1689년 권리장전으로 국왕 권력 제한과 의회 권한 강화를 이룬 영국 정체를 괜찮게 보았습니다. 당시 몽테스키외가 말한 삼권분립은 엄밀하게 보면 집행권(군주), 입법권(귀족들의 상원), 입법권(평민들의 하원) 간 계급 분립 성격이 강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한 정치철학 해설서는 "몽테스키외는 오늘날 익숙한 삼권분립을 도입하자마자 사법권력은 어떤 의미에서 '무효'라고 주장함으로써 삼권 가운데 3분의1을 제거해버렸다"고 쓰고 있습니다. 몽테스키외의 텍스트를 보며 법고창신(法古創新)을 곱씹습니다. 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 가되 그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연암 박지원의 통찰입니다. 몽테스키외보다 48년 뒤에 난 연암은 그와 동시대를 산 조선의 거인입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지은이 앨런 라이언 옮긴이 남경태 이광일, 『정치사상사』(ON POLITICS, A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from Herodotus to the Present), ㈜문학동네, 2017 - Montesquieu, 『The Spirit of Laws』, Edited and translated by Anne M. Cohler | Basia Carolyn Miller | and Harold Samuel Stone, Cambridge: Cambridge Univ. Press, 1989, p. 160. 재인용

2. 지은이 스티븐 B. 스미스 옮긴이 오숙은, 정치철학, 문학동네, 2018

3. 조국, 『조국의 법고전 산책』, 오마이북, 2022 (경기사이버도서관, 유통사 교보문고) -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고봉만 옮김, 책세상, 2006, p. 68. 71. 76. 재인용

4. 윤원근 글 | 최우빈 그림,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50선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김영사, 2010

5.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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