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사법 리스크에 카톡 개편 논란까지 '위기의 카카오'
'표정관리' 네이버, 출신인사들 입각에 가상자산·AI 사업 호조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국내 플랫폼 산업의 양대 축으로 나란히 성장해온 네이버와 카카오의 발걸음이 언제부턴가 사뭇 달라 보인다. 문어발 논란에 휘말릴 만큼 고속 성장 신화를 함께 써왔지만, 현재 기상도만 놓고 보면 네이버는 '맑음', 카카오는 '흐림'이다. 네이버는 여러 호재를 누리며 성장 전망을 밝혔지만, 카카오는 이상하리만치 불운과 악재가 겹치는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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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일부터 보자면, 카카오에 잇달아 닥친 위기와 구설이 눈에 띈다. '관제탑'부터 흔들리는 게 문제의 근원이다. 총수인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최근 주가 조작 연루 혐의로 중형을 구형받았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암까지 재발해 재수술받은 안타까운 처지다. 만신창이가 된 그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자 '카카오 호' 내부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대로 어느 조직이든 사람을 적재적소에 쓰는지가 성패를 결정한다. 최종 인사권자가 적절한 판단을 내릴 환경에 있지 못하면 도미노가 쓰러지듯 여기저기 고장 나는 건 당연하다.
최근 카카오톡이 애플리케이션 환경을 개편했다가 이용자들로부터 질타받고 '원상복구'를 약속했던 실기는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일개 메신저 스타트업이었던 카카오가 세자릿수 계열사를 거느린 초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건 순전히 카톡 메신저를 기반으로 사업을 전방위 확장할 수 있었던 덕이다. 그렇다면 그룹의 '모태'이자 핵심 자원인 카톡을 개편할 때 미리 사용자 성향과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소통해야 했다. 결국 이번 논란은 스타트업 시절의 '초심'을 잃고 기본마저 등한시한 오만이 원인일 수 있다.
물론 '혁신'은 다수가 반대했던 일들에서 일어나고, 플랫폼 기업은 그런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카톡이 인스타그램을 그저 따라 했다고 의심한다. 인스타는 노출과 타인 사생활 엿보기가 핵심이지만, 카톡은 관계 유지와 은밀한 대화가 주목적이다. 한국인 다수는 원래 통신사에서 기본 제공하는 문자메시지 대용으로 카톡을 사용한다. '짝퉁 인스타'가 아닌 '대화와 정보교환 도구'를 원한다는 얘기다. 그런 맥락도 파악 못 한 의사 결정권자가 있다면 자격 미달이다. 2022년 서버 화재로 카톡이 마비돼 다수 국민이 혼란에 빠졌던 사태는 악재이긴 했지만, 반대로 카톡이 국민 일상에 깊이 파고든 '국민 메신저'임을 현실에서 입증한 긍정적 측면도 있었다.
이 밖에도 카카오는 업계에서 향후 생존을 가를 미래 사업으로 주목받는 스테이블코인과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별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특히 경쟁자 네이버와 비교하면 더 그래 보인다. 수많은 기업이 자고 나면 명멸하는 온라인 업계 특성상 카카오 스스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할 대목이다. 최고 지휘관의 건강 문제와 사법 리스크는 통제할 수 없거나 이미 벌어진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내부를 재정비하지 못하면 일련의 실패들이 재발할 수 있다. 조직 구성과 인재 배치 및 운용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고 메스를 댈 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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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캡처. 재배포 DB 금지]
반대로 네이버는 새로운 화양연화를 맞는 듯 연일 호조다. 새 정부 들어 초대 내각과 대통령실에 네이버 경영진 출신이 대거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좋은 일들이 잇따르고 있다. 최휘영, 한성숙 전 NHN 대표이사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자리에 각각 올랐다.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도 네이버에서 AI 부문을 지휘해온 '네이버맨'이다. 이들 부처와 수석비서관실이 모두 네이버의 사업 분야 및 규제와 직접 관련된 곳이란 점에서 '네이버 전성시대'란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상승세를 탄 네이버는 주력 사업 분야에서 지분 인수와 교환 등 과감한 투자로 몸집 키우기에 나선 형국이다. 카카오가 계열사 축소를 꾸준히 진행 중인 것과 달리 네이버는 공격적으로 계열사를 늘리고 있다. 마치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고 각오한 듯 보인다. AI 분야에서 총력전을 벌이는 한편, 글로벌 콘텐츠 사업은 물론 핀테크와 부동산 분야 등에서도 과감한 투자와 적극적인 외연 확장을 시도 중이다. 이참에 카카오를 제치고 양대 플랫폼 꼬리표를 떼어내며 명실상부한 선도 기업으로 부상하고 싶은 듯한 기세가 느껴진다.
특히 정부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유통을 위한 시스템 마련을 본격화한 가운데 최근 네이버가 국내 1위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를 계열사로 편입한다는 소식은 경쟁자들을 바짝 긴장하게 했다. 네이버가 스테이블코인 시장 선점 경쟁에서 한참 앞서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올 정도다. 게다가 두나무를 인수할 네이버파이낸셜은 국내 간편결제 플랫폼 1위 업체다. 간편결제 플랫폼 선두 주자와 1등 가상자산 거래소의 만남은 국내 핀테크 생태계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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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제공. 재배포 DB 금지]
21세기에 등장해 대한민국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발전을 선도해온 네이버와 카카오는 이전에 그랬듯 앞으로도 엎치락뒤치락 선의의 경쟁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카카오가 주춤하고 네이버의 발걸음이 빨라졌지만, 플랫폼 산업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울 만큼 변화무쌍하다. 어느 시점에 어느 기업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지 사실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네이버가 현 상황을 계기로 카카오와 격차를 벌리며 부동의 선도 플랫폼이 될지, 아니면 카카오가 뼈를 깎는 내부 혁신과 조직 개편, 인재 이동 등을 통해 역전의 발판을 만들지 귀추가 주목된다. 어느 쪽이 이기든, 강자들의 '착한 경쟁'은 결과적으로 공동체 전체를 풍요롭게 만드니 국민에겐 좋은 일이다.
lesli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10월03일 08시03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