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우리는 인류 역사가 경험하지 못한 거대한 전환의 문턱에 서 있다. 인공지능(AI)의 중심축이 '대규모 언어모델(LLM)'과 같이 데이터를 학습하고 데이터를 생성하던 시대에서 AI가 스스로 추론하고, 계획을 세우며 상호 협력해 업무 프로세스를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에이전트(Agent)' 시대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와 생산성 향상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사업모델의 출현과 산업 구조의 파괴적 재편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파괴적 전환기에 복고 기술에 대한 관심이 다시 증폭되고 있다. 한동안 외면 받았던 '온톨로지(Ontology)'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온톨로지는 사물과 개념, 관계를 체계적으로 정의해 지식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안한 이 개념은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철학적 기반이었다. 그러나 데이터 기반의 기계학습이 주류 AI 기술로 떠오르면서 국내에서는 그 존재가 잊혀져 갔다. 그리고 이제 AI가 '이해'와 '추론'을 요구받는 에이전트 시대로 접어들면서, 온톨로지가 다시금 AI의 두뇌를 증강하는 핵심 언어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 뇌의 좌반구와 우반구가 협력을 하듯, 최근의 AI 기술은 뉴로-심볼릭(Neuro-symbolic) 기술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LLM의 언어적 유창성과 온톨로지의 논리적 정밀함을 결합해, 답변 생성을 넘어 의미 있는 판단, 행동을 수행하고 상황을 예측하는 에이전트틱 AI 구현을 가능케 한다.
예컨대 제조·의료·국방과 같은 복잡한 산업 영역에서, AI가 데이터를 '읽는' 수준이 아니라 업무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실행하는 지적 동반자로 역할하게 되는 것이다. 데이터 관점에서는 과거 지진했던 데이터 웨어하우스나 데이터 레이크의 한계를 극복하고, 데이터를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지능적 매시업이 가능한 의미적 데이터 패브릭 시대로 전환되는 것이다.
산업화 관점에서는 오래 전부터 막대한 투자와 성공 사례를 만들어 온 미국 팔란티어에 의해 빠르게 독점화 되고 있다. 팔란티어는 제조, 국방, 의료 등 주요 분야에서 온톨로지와 자율적 데이터 에이전트 개념을 앞세워 산업적 독점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빠르게 침투, 확산되고 있다. 익숙한 챗GPT 부류의 소비자 서비스의 확산을 넘어서 산업 주권을 좌우하는 소버린 산업 AI의 시대가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명확해 보인다. 과거 우리 능력으로 경쟁은 불가하다며 LLM 개발에 소극적이었던 전철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은 이미 풍부한 산업 데이터와 고도화된 제조·의료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온톨로지적 지식체계와 LLM을 결합한 에이전틱 프로세스를 조기에 실현한다면, 우리는 데이터 종속에서 벗어나 주권적 AI 기술을 선도하고 산업 관점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
AI는 더 이상 인간의 질문에 답변을 생성하는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주체적 협력 파트너'로 진화하고 있다. 지식의 구조를 다시 세우는 일, 그리고 산업 AI 주권과 국방 AI 주권을 확보하는 일은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전략적 선택이다. 23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린 '온전한 지식의 지도' 위에, 우리는 다시금 새로운 지성의 지도와 산업적 리더십을 그려가야 할 때다.
이경일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 초거대AI추진협의회 이사·솔트룩스 대표 tony.lee@saltlu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