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충돌 속 진퇴양난 위기감…美 현금투자 요구에 中 제재 악재까지
대미 투자협상·환율 등 과제 산적…관계당국 정밀대처로 복합위기 예방해야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결국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패권 경쟁이 무역 전쟁을 중심으로 격화하면서 사이에 낀 우리나라에 미치는 피해가 가시화하고 있다. 미·중 양국이 서로 보복 관세와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는 등 최근 갈등이 극에 달하자 중국 정부가 우리 기업에까지 제재를 가한 것이다. 우리 해운·조선 기업인 한화오션의 필리조선소를 비롯한 미국 자회사 5곳을 중국 조직 및 개인의 거래 금지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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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오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심지어 중국은 제재 이유가 보복성 조치임을 명확히 했다. 미국이 중국 해운·조선업을 제재한 데 대한 '반격'이라는 노골적 표현을 통해서다. 중국 정부는 한화오션의 자회사들이 미국 정부의 중국 기업 제재 관련 조사에 협조해 중국의 이익을 해쳤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직설적으로 들었다. 한국이 미국의 혈맹이고 한화오션 자회사들이 미국 내 업체라 해도 다분히 의도적이고 감정적인 대응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한화오션 필리조선소가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의 상징적 장소라는 점도 우연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상 오랜 역사에서 반복됐던,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이 재연된 셈이다. 우리의 '안미경중'(安美經中 : 안보 지원은 미국에서 받고 중국과는 경제 공조를 유지) 기조에 불만을 드러냈던 미국이 통상 압박을 가중하는 어려운 시기에 중국 역시 우리나라를 상대로 실력 행사에 나서면서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진 듯한 형국이다. 이미 우리 정부는 안미경중 기조를 폐기하겠다는 방침을 지난 8월 이재명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서 공식화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중국은 불쾌감을 드러내며 반발했고 미국은 말이 아닌 향후 실제 행동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런 움직임은 미국과 중국 양쪽 모두 한국을 상대로 "누구 편인지 정체를 밝히라"는 요구를 노골화하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강자가 줄서기를 강요할 때 약자들의 선택지는 당연히 좁을 수밖에 없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회색지대를 유지하는 건 고도의 외교술을 망라하더라도 현실적 한계가 있다. 이런 난국을 맞아 우리 관계 당국과 정치권은 국민 전체가 고통받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정밀한 대처 방안을 이성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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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TV 제공]
무엇보다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현재 미·중 갈등이 일시적 무역 전쟁에 국한한다면 단기 대책으로 돌파할 수 있겠지만, 미·중 충돌은 한 쪽이 굴복할 때까지 계속될 패권 경쟁이란 게 정설이다. 그렇다면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관점에서 관련 대책과 국가적 입장을 가다듬어야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 미국이 혈맹을 상대로 굳이 현금성 거액 투자라는 무리한 요구를 고수하는 이유가 단순히 경제적인 것인지, 아니면 미·중 대결 같은 정치적 요인과도 맞물린 것인지 등 모든 변수를 파악해야 한다.
이미 이번 사태가 있기 전부터 미·중 충돌 재개의 최대 피해국이 우리나라로 나타난 건 걱정을 더 깊게 만든다. 미국 상무부의 올해 1분기 통계에서 10대 대미 수출국 중 한국만 유일하게 수출액이 줄었다. 이런 일련의 현상들은 우리 경제의 미국과 중국 의존도가 거의 절대적임을 방증한다. 게다가 우리는 자급자족 농업국이 아니라 무역 의존도가 극도로 높은 공업국이어서 대외 변수에 매우 취약하다. 이는 현재 좋지 않은 환율 상황과 무역 지표 등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중 대결 같은 대외 여건 악화와 저성장 장기화가 1997년 외환 위기 못지않은 경제 대란을 부를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부디 그런 일을 피할 수 있도록 모든 이해 관계자들이 지혜를 모아주길 바란다.
lesli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10월15일 08시54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