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도 노벨상 수상, 미국의 베네수엘라 압박 강화 맞물려 주목
생명위협속 항쟁 마차도에 힘싣기…친정부측 '극우 친미 파시스트' 비난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올해 노벨평화상은 베네수엘라 독재 정권에 맞서 20여년간 민주화 투쟁을 이어온 야권 지도자 마리아 마차도에 돌아갔다. 이는 중남미 가난한 나라의 정치 상황에 다시 세계인의 시선이 쏠리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꽤 살 만했던 나라에서 최빈국을 향해 추락 중인 나라, 우리에겐 별 상관없어 보이는 먼 나라지만, 단순한 현상 속에서 세계사의 큰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는 나라는 도태돼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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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도의 평화상 수상은 서방 진영이 베네수엘라를 잊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는 환기의 메시지다. 생명을 위협받으면서도 망명을 택하지 않고 반독재 투쟁을 벌이는 마차도의 용기와 의지를 공식 평가한 것이다. 실제 서방 국가들은 일제히 마차도의 수상을 축하하며 베네수엘라 민주화를 기원했다. 서방 전체가 마차도의 반독재 투쟁을 지지하고 지원하겠다는 의사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무엇보다 최근 미국의 베네수엘라 압박 강화와 맞물려 주목되는 지점이다. 반대로 중국과 러시아 등 베네수엘라 현 정권과 가까운 국가사회주의 성향 진영에선 부정적 반응이 나온다.
노벨상 수상으로 베네수엘라 민주화의 상징임을 세계적으로 공인받게 된 마차도는 자유시장경제와 보수주의 정치 철학을 신봉한다. 친미 성향이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우호적 태도를 보인다. 베네수엘라 야권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지지가 지속되길 바란다는 의사도 공개적으로 표현한다. 노벨평화상 수상 원동력으로 국민에 이어 "대의를 지지해준 트럼프"를 꼽을 정도였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 전화를 걸어 감사의 뜻을 직접 전하기도 했다. 베네수엘라 야권 지지자들은 통제된 사회 속에서 이번 경사를 대놓고 기뻐하진 못하지만 앞으로 극적인 변화가 올 가능성에 희망을 키우고 있다.
마차도와 트럼프 대통령은 보수 성향 시장경제론자라는 점 외에 부정선거 코드에서도 친밀감을 느낄 공통점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임을 노렸던 과거 대선에서 자신의 낙선이 '전체주의 외세가 개입한 부정선거' 탓이라 주장했다. 마차도 역시 지난 대선에서 자기 대신 출마한 에드문도 곤살레스 후보의 낙선이 마두로 정권의 조직적 부정선거 조작 때문이라고 강변한다. 당시 대선 개표는 실시간 공개되지 않고 참관조차 차단됐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개표 종료 전 3선을 선언했으나 야권은 곤살레스가 압승했다며 반발, 소요 사태로 이어지며 사상자가 다수 나왔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당시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마두로 정부와 지지자들은 마차도를 향한 세계적 조명이 일으킬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친정부 인사들은 마차도를 '극우 파시스트', '친미 신자유주의자', '친이스라엘 시오니스트' 등의 프레임을 씌워 비난한다. 국가 산업을 말살해 외세에 내주려는 민영화 자본주의자인 동시에 미국을 등에 업고 쿠데타를 노리는 반민족 매국노로 묘사하고 있다. 이에 맞선 야권 지지자들 역시 이번 수상을 계기로 좌파 포퓰리스트 독재 타도 구호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마차도의 수상이 베네수엘라 민주화의 기폭제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다른 한편에선 옛 사례를 들어 회의론을 제기한다. 과거 권위주의 독재 국가에서 반정부 인사가 평화상을 받아도 실질적 변화는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의 류샤오보, 이란의 시린 에바디 등 인권 운동가들이 평화상을 받았으나 체제는 흔들리지 않았다. 특히 전체주의 국가들은 언론이 통제돼 노벨상 수상 같은 이벤트를 계기로 반정부 여론이 조성되기 어렵다. 베네수엘라 역시 반정부 보도를 금지하며 수많은 방송사와 신문사들을 폐쇄한 나라다. 작년엔 유엔 인권사무소까지 폐쇄되고 직원들이 추방됐다.
lesli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10월13일 13시54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