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로] 미국의 이례적 주한공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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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미국이 이달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을 앞두고 조지프 윤 주한대사대리를 전격 교체하되 임시 체제는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후임 대사대리로는 케빈 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국 부차관보가 유력하다고 한다. 아직 공식 확정되진 않았지만, 사실이라면 이런 변화는 여러 면에서 이례적이다. 특히 우리나라가 미국의 혈맹이란 점에서 현재 미국의 주(駐)한국공관 운영은 심상치 않은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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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국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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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한반도 지정학 리스크가 여전한 가운데 이뤄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굳이 대사대리를 바꾸려는 배경과 의도에 관심이 쏠린다. 대사대리는 임시 관리 체제를 뜻하는 만큼 임시직을 임시직으로 바꿀 필요성은 상식적으로 크지 않다. 과거에도 2021년에 주한대사대리 직책이 로버트 랩슨에서 크리스 델 코르소로 넘어가는 등 선례가 아예 없진 않지만, 대사대리를 다른 대사대리로 대체하는 건 여전히 정상적 상황이 아니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계기로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만남을 내부 검토해온 사실에 주목하는 의견도 있다. 윤 대사대리가 전임 정부 인사로 분류되는 만큼 북미 정상회담 성사 준비를 위해 '트럼프 사람'으로 임시 공관장을 급히 교체하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 1기 때와 달리 지금 북한은 여러 변화를 모색 중이다. 연일 한반도 두 국가론을 고착하려 애쓰고 핵보유국 위상을 인정받고자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따라서 미국으로선 이전과는 또 다른 새로운 대응 방식이 필요해졌다. 우리 당국은 미국이 한국을 제외한 채 북과 모종의 거래를 시도할 가능성까지 배제하지 않고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상황이다.

실제로 김 부차관보는 트럼프 정부 1기 때에도 북미 정상회담을 비롯한 여러 대북 정책 실무에 관여한 국무부 내 대북 관계 전문가다. 과거 미국 측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였던 윤 대사대리와는 정책적 결이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정부는 6자 회담이란 틀에 1기 때부터 매우 회의적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질질 시간만 끌어준 6자 회담과 한미 당국의 오랜 실기로 결국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될 수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김 부차관보는 미국 조지아주에서 최근 발생한 한국인 구금 사태의 재발 방지 및 후속책 마련을 위해 출범한 한미 비자 워킹그룹의 미국수석대표도 맡았을 만큼 한반도 업무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만약 미국의 이런 움직임이 북미 회담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소요 시간과 절차상 어느 정도 이해되는 측면은 있다. 정식 특명전권대사를 임명하려면 미 의회 인준과 양국 아그레망 획득 등에 수개월 여가 걸려서다. 만약 북한과 직접 대화 필요성이 시급하다면 대사대리 교체 같은 조치도 필요할 수는 있다. 북한이 최근 러시아, 중국과 관계 강화에 진력하는 국제정세 변화도 미국을 조급하게 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만 북한이 지금처럼 북·중·러 전체주의 대오를 다지는 상황이라면 미국은 오히려 여유를 갖고 현상을 지켜보며 근본적 대응책을 마련하려 할 거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미국이 주한 대사대리를 연속 임명한다면 대사 공석 사태가 장기화한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많다. 동아시아 삼국 중에서 중국과 일본 주재 대사는 일찌감치 임명됐지만 혈맹인 한국만 벌써 10개월가량 대사 공석이 이어지고 있다. 만약 새로운 대사대리 체제로 또 주한 대사관을 운영한다면 트럼프 1기 당시 1년 반가량 이어졌던 대사 공석 기록마저 넘어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우리나라를 서로 신뢰하는 동맹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 건 아닌지, 미국의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한국의 위상이 흔들리는 건 아닌지 걱정하기도 한다.

lesli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10월21일 06시33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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