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세계화와 자유무역 발달은 우리 삶에 풍요를 안겼다. 더 싸고 다양한 물건들을 예전보다 쉽게 얻을 수 있게 됐고, 각 나라 문화도 빠른 속도로 뒤섞이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대표적인 부작용은 생태계 교란이다.
한정된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던 생물들이 인간에 의해 바다와 하늘을 넘어 새로운 곳에 나타났다. 어떤 생물은 적응하지 못하지만, 반대로 어떤 생물은 원래 살던 환경보다 천적도 없고 먹이도 많은 신천지에서 번성한다. 그 결과 토착종이 멸종 위기에 빠지거나 전체 환경 균형이 깨지기도 한다. 지금 전 세계는 외래종의 위협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처럼 기존 생태계를 위협하는 생물을 생태계 교란종이라 부른다. 주로 외래종을 지칭하나 유전자 변형 생물도 포함된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세계 100대 악성 침입 외래종을 지정해 경고하기도 했다. 당연히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환경부에서 고시한 국내 생태계 교란종은 모두 39종이다.
언론에서 '괴물'로 묘사하며 자주 보도해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들이 많다. 황소개구리, 뉴트리아, 큰입배스, 붉은귀거북, 꽃매미 등이 한반도 생태계를 얼마 안 가 초토화할 거라는 위기설이 연일 지면과 전파를 탔다. 그러자 막대기, 꼬챙이, 그물 등을 들고 이들 유해종을 소탕하겠다는 애국자들이 등장했다. 정부가 보상금을 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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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매우 재미있는 현상이 하나 있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생태교란종들이 유독 한국에서만 맥을 못 춘다는 사실이다. 결국 시간이 꽤 지나 주변 환경에 동화되면 우려했던 것만큼 번성한 동식물이 많지 않다. 이를 두고 여러 분석이 나온다. 요즘 신세대 유행어인 '불반도'는 역시 무서운 곳인 걸까. 생태교란종들도 '강한 자 아니면 못 살아남는' 이곳에 적응하기 어려웠나 보다.
우선 혹독한 기후 조건이 이유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혹서기와 혹한기가 모두 있고 평균 연교차가 최대 32℃에 달한다. 기후변화 위기론이 뜨면서 이젠 일반인도 단 1~2℃의 기온 변화가 생물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걸 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하천 물살이 세고 자주 넘친다. 오래 적응한 토착종과 달리 이런 환경은 외래종에 지옥이 될 수 있다. 예컨대 한때 4대강 유역에 급격히 퍼졌던 큰빗이끼벌레는 혹한과 빠른 유속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다.
특별히 더 흥미로운 건 많은 외래종이 번성하지 못하는 큰 이유가 바로 '잡아 먹혀서'라는 점이다. 우리는 해로운 외래 생물을 먹어서 없애는 나라다. 토종 생물들도 외래종을 잡아먹지만, 사람도 가세한다. 한국인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유독 못 먹는 게 거의 없다. 독만 없다면 삶든 굽든 일단 먹어보려 시도한다. 특히 한국인에게 어떤 동식물이 '맛있다', '몸에 좋다', '정력에 좋다'고 소문나면 속된 말로 씨가 마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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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쥐로 불렸던 뉴트리아는 사람과 토종 동물의 합동 공격에 개체수가 급격히 줄었다. 1980년대에 남미에서 식용 및 모피용으로 들여왔는데, 자연에 버려진 개체가 급증하면서 환경 파괴 주범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천연기념물 삵이 이를 먹이로 인식하며 그 수가 줄었다. 게다가 뉴트리아 쓸개가 웅담과 비슷하다고 한국인에게 알려진 건 뉴트리아에겐 비극이었다.
황소개구리도 '단백질 공급용'으로 수입됐으나 저수지 등에 버려지며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가물치, 메기, 왜가리, 족제비가 먹이로 인식하며 개체수가 급감했다. 큰입배스와 블루길 등의 급증에 어느 정도 제동이 걸린 것도 이들 토종 생물의 먹성 덕이라고 한다. 동남아가 원산지인 꽃매미와 등검은말벌은 세계 각국 생태계를 극심하게 파괴 중이지만, 한국에선 전파 속도가 느리다. 꽃매미의 경우 그 알을 토종곤충 꽃매미벼룩좀벌이 먹어 치워 번식을 억제한다. 등검은말벌은 장수말벌을 비롯한 토종 말벌들의 위세에 눌렸다.
생태교란종 가운데 식물은 사람이 맡았다. 단풍잎돼지풀과 가시상추는 세계적으로 악명 높다. 줄기와 뿌리가 길게 자라고 번식력이 왕성해 다른 식물을 죽이는데, 심지어 단풍잎돼지풀 꽃가루는 알레르기를 유발한다. 그러나 이들 식물 입장에서 불행한 대목은 한국인이 나물과 쌈 채소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쌉싸름한 맛과 씹히는 식감에 반한 한국인들은 두 생태계 교란 식물을 고기에 싸서 먹고, 무쳐서도 먹고 전으로도 부쳐 먹는다. 심지어 가시상추는 재배 농가까지 생겼다. 환삼덩굴도 식용 약초로 재조명됐고 한국인이 관심 있는 '탈모 예방'에 효능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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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에선 악성 외래종인데, 한국인의 입맛에 맞아 교란종에 들지 못한 유입 생물도 있다. 톱날꽃게는 이탈리아 등에서 혈세를 들여 퇴치하느라 골머리를 썩이지만, 우리나라에선 '밥도둑'으로 주목받는다. 낙동강에 서식 중인데 너무 맛있어서 '부산청게'로 브랜드화까지 됐다. 심지어 꽃게처럼 포획 금지 시기가 생기고 어린 개체를 방사한다. 천연기념물 수달이 즐겨 먹는 미국가재, 소양강에 자리 잡은 브라운송어도 맛있다고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중해홍합 역시 침입 외래종이어서 교란종 지정 가능성이 있었으나 홍합 수요가 높은 국내 특성상 이젠 토착화 단계인 듯하다. 심지어 진주담치로 불리며 양식까지 할 정도다.
여전히 우리나라엔 미국선녀벌레, 가시박, 마른나무 흰개미 등 골치 아픈 생태계교란생물들이 남아있다. 다만 한반도에 들어온 외래종 역사를 볼 때 토종과 상호 적응기를 지나면 자연스레 통제 단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도 보인다. 생물은 인위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오랜 교훈을 되새기며 꼭 필요한 개입만 하는 게 현명할지 모르겠다. 붉은귀거북, 늑대거북 등 거북류들이 좀처럼 줄지 않아 문제인데, 결정적 천적이 나올 수도 있다. 거북류의 고기 맛이 나쁘지 않다던데, 언젠가 장수(長壽)에 특효라는 소문이 돌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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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li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10월01일 06시31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