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속 커지는 가뭄·홍수 위협…해법은 과학적 물관리뿐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강릉 가뭄 사태가 어느 정도 해결 국면에 접어들었다. 저수지가 거의 바닥을 드러내기 전까지 마르면서 제한 급수, 급수차 동원에 재난 사태까지 선포됐던 총체적 위기에서 벗어나 한숨을 돌리게 됐다. 오랫동안 비가 안 온 건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이다. 그러나 이 지역 가뭄과 물 부족이 연중행사처럼 반복됐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인재(人災)라 할 수 있다. 미개했던 과거엔 무당을 불러 기우제를 지내며 요행을 바랐지만, 첨단 과학 시대에도 우리 삶을 운에 맡길 순 없지 않나. 21세기 선진국에서 시민들이 이 정도 불편과 고통을 겪은 건 대비 태세와 관리 능력 부족 탓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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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번 사태는 물 관리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다. 사람은 물 없으면 단 하루도 살 수 없고, 더러운 물도 없는 것보단 낫다는 진리를 되새기는 계기였다. 천재지변은 불가피하니 평소 대비하고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 특히 동고서저(東高西低) 산악 지형인 우리나라는 강물 수량 변동성을 뜻하는 하상계수가 극히 높다. 다른 나라 주요 하천들의 평균 10배 안팎에 달할 정도다. 비가 안 오면 강이 금방 마르지만, 호우 때는 순식간에 강이 넘치는 지형이란 뜻이다. 물 부족과 홍수에 따른 재산과 인명 피해가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니 피할 방도는 댐과 저수지 같은 인공 구조물로 조절 능력을 키우는 것뿐이다. 게다가 세계 기후 변화는 가뭄, 홍수 등 자연재해 발생 확률을 점점 높이고 있다.
수자원 관리는 거대 인프라가 필요하므로 사전 투자 및 집행을 위한 발 빠른 의사 결정이 필수다. 막대한 예산이 미리 배정돼야 하는 데다 사업 결정이 나도 완공 및 운영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서다. 애초 정부는 기후 변화에 대응해 14개 지역에 댐을 짓기로 했지만, 올해 들어 거주민과 환경단체 등의 반대에 밀려 대상이 9곳으로 줄었다. 반도체 클러스터 물 수요를 반영했던 댐 후보지 추진이 보류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이 숙고 끝에 잘 결정했겠으나 혹여 눈앞의 작은 일 때문에 대사를 그르치는 실기는 없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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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9일 강원 강릉시 오봉저수지에서 육·해·공군과 소방, 전국 지자체 및 기관이 지원한 살수차들이 수위를 높이고자 물을 쏟아붓고 있다.
최악의 가뭄 사태를 맞고 있는 강릉지역의 생활용수 87%를 공급하는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은 이날 오전 6시 기준 12.3%로(평년 70.9%) 전날(12.4%)보다 0.1%포인트 떨어졌다. 2025.9.9
강릉을 비롯한 강원 동해안은 다른 지역보다 가뭄 현상이 점점 심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내년에 또 이런 고통을 겪고 싶지 않다면 물 관리에 성공한 모범 지역 사례를 배워야 한다. 강릉과 머지않은 해안 도시인 속초가 올여름 가뭄을 이겨낸 건 대표적인 우수 사례다. 속초 역시 만성 물 부족 지역이지만 거의 20년 전부터 대비에 들어가 지금은 가뭄도 버티는 시스템을 갖췄다. 지하댐들을 건설해 비상 수원지를 확보했고 지하수 개발, 수도관 및 정수장 정비 등으로 유수율을 끌어올렸다. 충남이 보령댐 저수 공급망 확충과 지천댐 건설 등을 통해 식수 및 농업용수 부족 사태를 극복하고, 충북이 댐 정비와 대형 저수지 건설 등으로 각종 용수 저장량을 늘린 사례도 있다.
기존 시설의 효율적 활용이 중요하다는 교훈도 얻었다. 강릉이 타들어 가는 와중에도 인근 평창 도암댐(총저수량 3천만t) 물이 막판 비상 방류 전까지 활용되지 못했다. 강원 일대 용수 공급용으로 건설됐지만, 수질 시비에 무려 24년간 강릉으로 물을 보내지 못한 댐이다. 수질 논란 역시 사람의 잘못이다. 고랭지 채소밭과 축사 등 인근 오염원을 관리 못 해 수질이 나빠졌는데, 실효성 있는 개선책은 부족했다. 그러는 동안 거액을 들여 지은 댐에선 막대한 수자원과 발전 자원이 방치되는 국가적 낭비가 발생했다. 심지어 가뭄 같은 비상사태에서도 댐 물을 못 쓴 건 큰 문제다. 부유물 제거와 화학적 정화, 주변 환경 규제 강화 등으로 수질을 조속히 개선해 주변 도시에 언제든 물을 댈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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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8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도암댐에 초록빛 물이 차 있다.
강릉 가뭄 사태가 심화함에 따라 정부는 도암댐을 활용한 해갈 방안을 검토 중이다. 202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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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9월23일 08시33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