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인공지능(AI) 3대 강국’이라는 담대한 목표를 향해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데이터 주권과 기술 독립을 위한 ‘소버린 AI’는 이같은 논의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현재 소버린 AI에 대한 접근이 거대언어모델(LLM) 개발에만 치우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우려스럽다. 언어는 AI의 한 영역일 뿐, 진정한 의미의 AI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보다 균형 잡힌 시각과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생성형 AI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AI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피지컬 AI’라는 더 큰 패러다임을 바라봐야 할 시점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월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 전자제품 박람회 ‘CES 2025’에서 “AI의 다음 프론티어는 피지컬 AI”라고 선언한 건 피지컬 AI로의 전환이 거스를 수 없는 미래임을 보여준다. 피지컬 AI는 향후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글로벌 정보기술(IT) 시장 조사 기관 스태티스타는 최근 글로벌 AI 로보틱스 시장이 2030년 약 643억 달러(약 85조 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피지컬 AI란 AI가 센서를 이용해 현실을 인식하고, 두뇌격인 AI모델로 판단하며 액추에이터로 실제 임무를 수행하는 지능형 시스템을 총칭한다.
피지컬 AI의 성장은 디지털 세계에서만 펼쳐지던 AI 전장이 현실 세계로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미국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인 ‘피규어 AI’에 약 6억 7500만 달러(약 9365억원)를 투자하는 등 ‘행동하는 AI’는 막대한 자본이 몰리는 새로운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는 ‘보는 AI’, 즉 컴퓨터 비전 기술이 있다. AI가 물리적 세계에서 의미 있는 행동을 하려면 먼저 주변 환경과 사물을 정확히 ‘보고’ 이해해야 한다. 최근 피지컬 AI 기술이 언어 명령을 시각 정보와 결합해 행동으로 연결하는 ‘시각-언어-행동(VLA) 모델’로 발전하는 것만 두고 보더라도 비전 기술 없이는 피지컬 AI가 완성될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여기서 대한민국이 지닌 독보적인 잠재력이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5위의 제조업 강국이자, 국제로봇연맹(IFR)이 공인한 세계에서 로봇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다. 현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제조 기업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설비를 갖추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설비의 눈과 두뇌가 되어줄 ‘비전 AI’다. 생산 라인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제품의 미세한 결함을 감별하고, 건설 현장 노동자의 안전을 확보하며 물류 시스템을 최적화하는 비전 AI 기술의 발전이야말로 현장의 혁신과 직결된 핵심 과제다.
다행히 우리 정부도 이같은 흐름에 발맞춰 ‘제4차 지능형 로봇 기본계획’ 등을 통해 2030년까지 민관 합동으로 3조 원 이상을 투자해 AI 기반 로봇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가 가진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인프라와 로봇 활용 경험에 독보적인 비전 AI 기술력을 결합한다면 ‘테크 주권’을 갖춘 AI 강국으로 가는 현실적 경로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AI 강국으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물리 세계를 이해하는 ‘피지컬 AI’ 시대로의 빠른 전환이 필수다. 우리의 강점인 제조업과 로봇 기술에 날개를 달아줄 ‘보는 AI’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 언어와 비전, 두뇌와 감각이 조화롭게 발전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디지털 세상을 넘어 물리적 현실 세계를 선도하는 진정한 ‘피지컬 AI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김현수 슈퍼브에이아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