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퇴직자의 한산했던 모친상[정경아의 퇴직생활백서]

4 days ago 5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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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최근에 어머니가 하늘로 떠나셨다. 애통함은 뒤로한 채 어머니를 보내드릴 절차를 준비해야 했다. 어떻게 할까. 형제들과 상의한 끝에 가족장을 치르기로 했다. 어머니의 뜻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우리 형제 중 나를 포함한 두 명이 퇴직자였다. 회사를 그만둔 지 오래돼 연락할 지인도 별로 없었고, 혹여 있어도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초반부터 가족장에 대해 의아하다는 시선이 많았다. 직장에 다니는 가족들이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우리 입장과는 달리, 장례는 널리 알려야 예의라는 반응이 강했다. 부고를 꼭 회사 게시판에 올려야 한다거나, 대표 한 명쯤은 찾아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제안은 고마웠으나 유족의 의사가 존중받지 못하는 듯해 아쉬웠다.

그럼에도 가족장을 치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장례는 기대 이상으로 커다란 울림을 남겼다. 특히 다음의 세 가지 이유에서 그 선택이 옳았다고 여겨졌다.

첫째, 온전히 어머니만을 기리는 시간이 되었다. 몇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가까운 분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장례식장 분위기가 불편하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영전에 헌화를 마치신 친척들이 뜬금없는 말들을 꺼냈다. 그간 아버지를 제대로 모셨느냐는 이야기부터 공동 명의의 아버지 재산을 어떻게 처리할 거냐는 질문까지 이어졌다. 순간 애도를 위한 자리가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이번 장례식은 달랐다. 순수하게 조문만을 위해 오신 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응당 손님들을 대접하는 과정도 필요하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오롯이 어머니께만 집중할 수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했던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울고 웃었다. 그럴수록 어머니의 사랑과 은혜가 크게 다가왔다. 형제 중 한 명이 “우리와 계시는 걸 엄마가 좋아하실 것 같다”고 말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가족 간의 관계가 더욱 단단해졌다. 우리 형제는 자라서는 긴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었다. 학교 졸업 후 각자의 위치에서 살아가느라 주변을 챙길 여력이 부족했다. 저마다 가정을 꾸린 뒤로는 거리가 한층 멀어졌다. 기껏해야 부모님을 통해 안부를 전해 듣는 게 고작이었다. 막역했던 피붙이인데도 때로는 이웃사촌보다 소원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한자리에 앉아 있기조차 어색했다. 관심사가 달라 이야기가 겉돌았다. 식성도 말투도 달라져 마치 딴사람인 양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세월의 벽이 허물어졌다. 공통의 슬픔 앞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어머니의 빈자리를 같이 메워 나갔다. ‘어머니가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구나.’ 다음 만남을 약속하며 불쑥 든 생각이었다. 셋째,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과거에 필자는 성대하고 화려한 경조사가 지극히 당연한 줄 알았다. 부모님 장례식에 문상객이 많으면 먼 곳에 계신 부모님께서 대견해하실 듯했고, 자녀 결혼식에 하객이 넘치면 아이의 기가 살아날 거라 확신했다. 그런 북적임이야말로 가시는 부모님을 위한 마지막 효도이고, 시작하는 아이를 위한 기본적인 책임이라 여겼다.

직접 겪고 나서야 깨달았다. 어느 면에서는 조용한 이별이 오히려 더 풍성했다. 우리 가족은 열 명 남짓이었으나 어머니를 추모하는 마음만큼은 손님 가득한 장례식 못지않았다. 방명록도 화환도 없었지만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았다. 차려야 할 격식이 없으니 감정에 솔직해졌고, 서두르지 않아도 되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천천히 되새길 수 있었다.

장점은 또 있었다. 예상외로 경제적 부담이 크지 않았다. 올 사람이 없으니 소규모 장소를 택했고 음식도 최소한으로 마련했다. 가족끼리 일손을 모은 점도 비용을 줄이는 데 한몫했다. 보통은 조의금을 받아 상을 치른다는 인식이 있지만 언젠가 되갚아야 할 빚이 생기지 않자 마음마저 가벼웠다. 소박하지만 정성스러운 식장 안에서, 자식에게 짐이 될까 늘 염려하셨던 어머니께서도 기뻐하지 않으셨을까.

사실 고민이 많았다. 그동안 냈던 부조금이 아깝기도 했고, 친지들에게 성의 없다는 오해를 받을까 봐 우려스러웠다. 장례식장을 오가는 이들도 신경 쓰였다. ‘왜 저렇게 비어 있을까?’ ‘사회생활을 잘못했나?’라는 뒷말을 할까 봐 두려웠다. 실제로 낯선 사람들이 빈소 안을 힐끗힐끗 들여다보기도 했는데, 몇 번 반복되다 보니 나중엔 무뎌졌다.

지금 되돌아봐도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다. 한산한 장례였지만 참으로 따뜻하고 의미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조문객 수나 외형적 격식보다 중요한 건 고인을 향한 진심과 가족 간의 위로였다. 어머니가 떠나신 자리에 남은 건 아쉬움보다도 감사였고, 그 여운은 긴 시간 우리 곁에 머물 것 같다. 조용히 하지만 깊이, 우리는 그렇게 어머니를 보내드렸다.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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