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네가 게임 할 때야”,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어이구 내가 못 살아”
이런 말을 하는 부모의 의도는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랑의 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말을 듣는 자녀에게는 '넌 쓸모없어'라는 부정적인 메시지로 다가올 수 있다.
부모가 자녀의 게임 행동을 중독이나 문제로만 해석하기 쉽다. 하지만 그 속에서 아이들이 느끼는 '자부심'의 의미는 종종 간과된다. 심리학자 트레이시는 자부심(pride)을 '자신이 유능하고 존중받을 만한 존재라는 신호'로 정의 한다. 청소년은 학교나 가정과 같은 일상에서 그런 기회를 쉽게 얻기 어렵다. 반면 게임 세계에서는 명확한 규칙, 즉각적 피드백, 랭킹시스템을 통해 청소년들은 '나는 뭔가 할 수 있다'는 성취감과 자부심을 맛본다. 흔히 '겜부심(게임+자부심)'이라고도 불리는 경험이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에는 자부심을 느끼기 어렵다. 자동차를 타고 40Km를 이동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같은 거리를 두 발로 뛴 마라토너에게는 더 없는 성취감과 자부심이 보상으로 주어진다. 그런데 이 거리보다 더 먼 100킬로미터 이상의 거리를 잠도 안 자고 뛰는 울트라마라토너도 있다. 이런 초장거리를 뛰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은 하지 않는 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연습이 필수적이다. 그 과정에서 비용도 많이 들어갈 뿐 아니라 심각한 부상도 자주 당한다. 가족들의 걱정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 취급 당하기 일쑤다. 그럼에도 이런 행동을 지속하는 이유는 결국 자부심 때문이다.
여가학자 스테빈스는 이런 활동을 '진지한 여가'라고 불렀다. 마라톤, 암벽등반, 스킨스쿠버 등은 본업과 무관하지만, 몰입과 성장을 경험하게 해준다. 세상이 발전하고 기술이 진보할수록, 일상에서 자부심을 느낄 기회는 줄어든 자리에 지루함이 밀려온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진지한 여가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이는 청소년들이 게임에 몰입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2024년 발표된 한국콘텐츠진흥원 연구에 의하면, 게임과몰입으로 분류된 게이머들의 '삶의 만족도'가 평범한 게이머들보다 높게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 결과는 게임이용이 진지한 여가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문제는 '자부심의 공간'을 강제로 빼앗을 때 벌어진다. '게임을 해도 적당히 해야지.', '너 그냥 두면 안되겠다. 치료받으러 같이 가자.' 이런 말들은 게임을 멈추게하긴 커녕, 자기 존재 전부를 부정당했다는 수치심을 남긴다. 수치심은 정체성의 상처로 이어지고, 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자신을 알아주는 그 게임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는 악순환이 발생할 뿐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세계'이자, '존중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무대'에 매달리는 것은 당연한 결말이다. 간간히 이어지던 부모와의 대화도 단절된다. 단절된 대화를 이어볼 요량으로 지속적으로 아이를 다그치면 격렬한 언행이 나타날 뿐이다. “저거봐, 저 녀석이 게임중독에 빠지더니 이제 애미애비도 몰라보네.”
견월망지(見月忘指)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고사성어다. 흔히 지엽적인 현상에 얽매여 본질을 보지 못할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청소년의 게임 몰입이라는 현상만을 문제로 삼기보다, 그 이면에 있는 자부심과 성장의 욕구를 이해하는 것이 본질에 더 가까운 접근이다.게임이용장애라는 이름 아래 자부심의 공간을 질병으로만 취급한다면, 결국 청소년의 자부심과 문화산업의 미래라는 소중한 손가락마저 꺾어버릴 수 있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심리학박사 zzazan01@daum.net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이장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