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이런 단잠, 저런 칼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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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만 해도 북한 대남방송 탓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어린 손자들은 다른 동네로 '잠동냥'까지 보냈어요". 이런 신문 기사 글귀를 보았습니다. 제목은 "1년 만에 단잠…또 켜질까 여전히 불안"이었습니다. 집 밖 다른 곳에서 잘 데를 찾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굳이 잠을 보약에 빗대지 않더라도 잘 자는 것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두가 압니다. 잠이 들어간 낱말이 발달한 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요.

단잠 계열어라 할 만한 것으로 일단, 통잠이 있습니다.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자는 잠입니다. 달곰한 잠이 단잠이지만 한자 단(單)을 써서 단잠 하면 통잠과 뜻이 판박이입니다.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죽 내처 잔 잠이라고 기억합니다. 꿀 같은 잠이 꿀잠이니 꿀잠은 단잠의 형님뻘입니다. 깊이 든 잠, 즉 숙면은 속잠/쇠잠/귀잠 합니다. 깊이 든 잠이 첫째 뜻이고 결혼한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함께 자는 잠이 둘째 뜻인 꽃잠도 있습니다. 숙면도 체력이 받쳐줘야 가능합니다. 나이가 제법 들어보면 압니다. 개(改)잠/개잠 자는 경우가 다반사이지요. 개(改)잠은 아침에 깨었다가 또다시 자는 잠입니다. 아침보다는 새벽에 많이들 깨지만요. 뒤엣것 개(犬)잠은 개가 깊이 잠들지 않듯이 깊이 자지 못하고 설치는 잠이고요. 깨었다가 다시 든 잠은 그루잠이라고도 합니다. 익숙한 선잠 외에 겉잠 역시 깊이 들지 않는 잠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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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한정판

[돌베개 제공]

우리가 새우잠이라 하면 어떤 잠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자는 잠일 테지요. 주로 모로 누워 불편하게 자는 잠입니다. 노루잠 하면 눈을 껌벅껌벅하는 노루를 떠올리게 됩니다. 깊이 들지 못하고 자꾸 놀라 깨는 잠입니다. 갓난아이가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잠은 나비잠이라고 합니다. 염려되어 마음을 놓지 못하고 조바심하며 자는 잠은 사로잠이고요. 풋잠은 잠든 지 얼마 안 되어 깊이 들지 못한 잠, 헛잠/꾀잠은 거짓으로 자는 체하는 잠, 쪽잠은 짧은 틈을 타서 불편하게 자는 잠, 한잠은 잠시 자는 잠, 덧잠은 잘 만큼 잔 후에 또 더 자는 잠을 말합니다. 한잠 자는 이는 깨우면 쉽게 깨지만, 꾀잠 자는 이는 깨워도 절대로 쉽게 깨지 않습니다. 다시 의미만 도드라지게 살려서 풀어써 볼까요. [자는 사람은 깨울 수 있지만 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습니다.]

비좁은 방에서 여럿이 모로 끼어 자는 잠은 갈치잠이라고 합니다. 칼잠도 같은 말이지요. 이 낱말이 쓰인 편지글 하나를 같이 읽으며 어휘 공부를 마무리합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옥중서간)에 실린 '여름 징역살이'였습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경향신문 기사, "1년 만에 단잠…또 켜질까 여전히 불안" (입력 2025.07.17 06:00 수정 2025.07.17 06:02) - https://www.khan.co.kr/article/202507170600025

2. 최종희, 『고급 한국어 학습 사전』(2015년 개정판), 커뮤니케이션북스, 2015

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4.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옥중서간), 돌베개, 2016, p. 329. 여름 징역살이(계수님께) 인용 / ※ 원문 그대로 인용, 참고로 '무색케'의 규범표기는 무색하게 또는 무색게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7월18일 05시55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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