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들] 파라오부터 트럼프까지…'불안'을 먹고 자란 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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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 영원불멸, 이집트부터 중세까지 신성과 권력의 상징

산업혁명과 골드러시로 금본위제도 확립, 美연준 탄생

미국 시장 개입에도 금값 상승, 35달러서 4천달러 돌파

달러 패권 흔들…불안심리 부추겨 금값 꺾지 못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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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파라오의 황금가면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인간은 영원히 변하지 않고 빛을 내는 금에서 태생적 두려움에서 벗어나려 했다. 고대 이집트의 제왕 파라오는 죽어서도 금처럼 썩지 않고 영생할 것이란 믿음에 시신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금으로 감쌌다. 신의 아들을 자처했던 파라오였지만, 그 역시 죽음의 공포에 떤 나약한 인간이었다.

옛부터 금은 신성(神聖)이자 권력 유지의 수단이기도 했다. 고대 유럽과 아시아의 황제들은 금빛 궁전으로 신의 아들을 자처했고, 중세 유럽의 교황은 전염병과 기근이 닥쳐 민심이 흔들리면 제단을 금으로 포장해 신의 권위를 드러냈다.

유럽 제국의 영토 확장과 산업혁명으로 인간의 금에 대한 집착은 종교에서 경제로 옮겨갔다. 1848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사람들은 곡괭이를 들고 서부로 몰려들었다. 신대륙을 차지한 아메리칸들의 골드러시(Gold rush)로 뉴욕 다음으로 가장 비싼 땅 샌프란시스코가 탄생했다. 미국에서 '금이 곧 화폐'를 뜻하는 금본위제도(Gold standard)가 확립된 요인 중 하나다.

1913년 금본위제도 아래 설립된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도 원래 금에서 출발한 시스템이다. 당시 연준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지폐를 가져오는 사람에게 언제든지 등가의 금으로 내어줄 수 있도록 금 지급 준비(Gold Reserve) 능력을 갖추는 것이었다.

이미지 확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건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건물

[연합뉴스 자료사진]

금본위제를 무너트린 건 역시 불안이었다. 1차 세계대전 후 배상금 처리와 국제수지 불균형에 대응하기 위해 주요국이 환율 조작을 일삼고 금을 비축하는 데 집중하자 국제 금융 시장 불안이 심화됐다. 금은 시장을 경색, 왜곡시키는 장애물이 됐고, 각국은 '황금족쇄'를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대공황에 맞닥트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금 사재기로 인한 대규모 예금인출(뱅크런) 사태가 우려되자 1933년 취임과 동시에 금과 달러 교환을 금지하고 금 강제매입에 나섰다. 금값은 온스당 35달러에 고정됐다. 미국의 막대한 재정 적자를 유발한 베트남전은 국제 금본위제를 무너트렸다.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세계 각국이 불안한 달러 대신 안전한 금을 요구하자 금의 국가간 태환을 금지했다. 그런데도 금은 죽지 않고 영원불멸의 생명력을 이어 나갔다. 중동 오일쇼크와 이라크 전쟁이 터지고 인플레로 달러 가치가 흔들릴 때마다 금값은 수직 상승을 거듭했다.

이미지 확대 금으로 단장된 백악관 오벌오피스

금으로 단장된 백악관 오벌오피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베트남전 때까지 온스당 35달러에 묶여있었던 금값이 4천달러를 돌파하며 신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다. 미국의 부채 급증 속에서 트럼프의 시장 간섭, 코인(암호화폐) 시장 확장으로 달러 패권이 흔들리자 불안을 느낀 사람들과 각국 은행이 안전자산인 금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금값은 시장참여자의 심리적 불안을 나타내는 지수다. 미국이 달러 지위를 지키고 국가 채무를 덜기 위해 암호화폐를 장려하고 나섰지만, 이 정도로 달러에 대한 회의적 시선을 잠재울 수 있을지 미지수다. 파라오가 죽으면서 남겼던 황금가면과 중세 교황의 금빛 성배, 그리고 천정부지로 값이 치솟는 오늘의 골드바, 모양은 달라졌지만 본질은 같다. 금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살아남을 존재라는 것이다.

jah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10월12일 09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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