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장 한명련 아들, 청나라 앞잡이 돼 정묘호란 유도
고종·명성황후 일가, 권력 지키려 청·일본군 끌어들여
장면 5·16 터지자 美 지원 기대, 김재규 美 배후설 부추겨
트럼프에 내정개입 요구 노골화, 부끄러운 행태 멈춰야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임진왜란의 영웅 한명련이 인조반정 세력의 모함으로 역적으로 몰려 죽자 그의 아들 한윤은 잔당을 이끌고 후금(청나라)으로 망명했다. 구국 의병장의 아들은 오랑캐의 장수가 됐다. 한윤은 아버지와 가문의 원한을 갚겠다며 청 태종 홍타이지에게 조선 침략을 부추겼다. 1627년 정묘년, 마침내 홍타이지는 3만 대군을 출병시켜 불과 50여일 만에 인조를 무릎 꿇리고 화친을 받아냈다. 청군의 속도전 뒤에는 조선의 지리와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길잡이 한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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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영접나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기자들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다. 2025.8.26
◇ 외세를 끌어들여 복수와 영달을 꾀했다는 점에서 고종과 명성황후(민자영)도 한윤과 닮았다. 민씨 정권의 부정부패에 분노한 군인들의 봉기에 맞서 청나라 군대를 불렀고, 동학농민군이 반외세·반봉건 기치를 내걸고 항쟁에 나서자 청군과 일본군까지 불러들여 진압했다. 그런 명성황후는 일본을 견제하려 러시아를 끌어들였다가 을미사변으로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 광복 이후에도 위정자들의 외세 의존 행태는 반복됐다. 의존의 대상이 과거 중국·일본·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4·19 혁명으로 하야한 이승만은 조국을 등지고 하와이로 망명했고, 제2공화국의 실권자였던 총리 장면은 5·16 군사쿠데타가 발발하자 미국 대사관과 CIA 한국지부장 관사를 찾았으나 문전박대를 당했다. 장면은 수녀원으로 몸을 숨기고는 미국의 개입을 시도했지만 거절당했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 박정희를 암살한 김재규는 보안사로 연행돼 조사받던 중 "내 뒤에는 미국이 있다"고 주장했다. 사형 선고 후 제출한 항소 이유보충서에서도 그는 "미국이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원했다", "미국과 한국 관계는 건국 후 최악이었다", "미국의 대한(對韓) 정책이 바뀔 가능성이 충분했다"고 강조했다. 박정희 암살 배후에 미국 카터 행정부가 있다는 설이 나온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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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계엄 고등군사재판 3차 공판에서 변호인단의 보충심문에 답하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오른쪽). 김재규는 항소 이유보충서에서 "미국이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원했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오늘날에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반발한 일부 보수 인사들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강경 우파를 향해 내정 개입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달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는 이재명 대통령을 미국에서 구속할 것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외세를 빌려 정적을 제거하려는 몸짓은 우리 현대사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모든 국가는 언제나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에 둔다. 트럼프가 입버릇처럼 북한 김정은과의 친분을 자랑하는 모습이 보여주듯,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 비루하게 외세의 힘에 기대어 권력을 지탱하던 시대는 오래전 종언을 고했는데도 일부 정치인들의 인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모습이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외세를 불러들이는 행태는 과거사가 이미 충분히 증명했듯 국익과 국민의 자존심을 해칠 뿐임을 유념해야 한다.
jah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9월02일 07시07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