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손발 부속실장, 환관 수장 '상선'에 비견
상선 김처선, 연산군에 직언하다 목숨 잃은 충신
野 김현지 공세는 예고된 수순…절제와 직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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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4차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하는 김현지 총무비서관의 모습. 2025.7.17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내시들의 수장인 상선(尙膳)은 단순히 왕의 옆에서 반찬(膳)을 챙기는 자리가 아니었다. 상선의 귓속말이 간신을 충신으로, 궁녀를 후궁으로 만들기도 했다. 내시는 고자가 되어야만 입궐할 수 있었지만, 결혼과 입양은 허용됐다. 왕실은 한 집안의 가장이 된 자라야 권력의 유혹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세종 때 입궐한 김처선(金處善)은 일곱 임금을 모신 충직한 내시였지만 마지막 임금인 폭군 연산군에게 직언하다 목숨을 잃었다. "고금에 전하 같은 이는 없었으니 오래 보위에 계시지 못할까 두렵다"는 간언에 연산군은 김처선의 가슴을 향해 활을 쏴 쓰러트린 뒤 칼로 다리를 베고 일어나라 명했다.
김처선이 "전하께서는 다리가 부러져도 걸을 수 있습니까"라 맞받자 연산군은 혀를 자르고 배를 갈랐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렸는지 연산군은 김처선의 '처(處)' 자 사용을 금하고 본관 전의(현재 세종시) 김씨를 없애버렸지만, 김처선은 조선의 충신을 상징하는 인물로 역사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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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국정농단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1년6개월 형기를 채우고 서울남부구치소에서 출소해 차량에 타고 있다. 2018.5.4
상선에 비견되는 대통령실 부속실장이 정쟁의 한복판에 들어섰다. 김현지 총무비서관이 부속실장으로 자리를 옮기자, 야당은 이를 기회로 삼아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김 실장에게 문고리 권력이라는 낙인을 찍어 정권의 도덕성을 흔들려는 의도로 보인다. 권력이 대통령에게 쏠리는 현행 헌법의 속성을 고려하면 부속실장 흔들기는 예고된 수순과 다름없다.
부속실장은 양날의 칼이다. 김영삼의 상도동 집사 장학로, 노무현의 '노풍(盧風)'을 주도한 양길승, 박근혜의 메시지를 대변한 정호성 등 역대 정권의 부속실장들은 하나같이 대선 승리의 공신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정권을 내놓으면 검경에 불려달리며 사법처리의 굴레를 피해가지 못했다.
김현지 실장이든, 그 뒤를 이을 어느 측근이든 전임자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대통령에게 사실 그대로를 보고하고, 지시는 사심을 배제한 채 전달하는 것이다. 주변의 일은 알면서도 모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하는 절제가 필요하다. 여기에 더해 김처선이 목숨을 걸고 직언했던 용기까지 갖출 때 비로소 자신과 대통령의 명예를 지켜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jah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10월01일 08시00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