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잔하자’가 사라진 자리[2030세상/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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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어느덧 송년회 시즌이다. 달력이 하나둘 약속으로 채워지기 시작하면 단톡방에는 어김없이 같은 말이 오간다. “올해 가기 전에 한잔하자.” ‘술 한잔하자.’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가장 많이 건넨 말 아닐까. 반가운 사람에게도, 서먹한 사람에게도, 고마운 사람에게도 이 한마디면 충분했다. 당장 날짜를 잡지 않아도 괜찮았다. 기약 없는 빈말이라는 사실을 서로 알면서도, 언젠가 마주 앉을 마음만큼은 진심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올해는 왠지 이 말이 입에 잘 붙지 않는다. 나만의 변화는 아닌 모양이다. 올해 1분기 가구의 월평균 주류 실질 소비지출은 1년 전보다 9.0% 줄어 10분기 연속 감소했다. 20대의 고위험 음주율도 2018년 15.9%에서 2024년 9.9%로 낮아졌다. 마실 수 있지만 굳이 마시지 않는다는 ‘소버 큐리어스(sobercurious)’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고, 회식 테이블에 ‘제로콜라 스무 병과 맥주 세 병’이 오른다는 이야기도 더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술을 권하지 않는 분위기와 건강을 중시하는 태도, 각자의 시간을 지키려는 마음이 겹치며 술자리는 예전과 다른 자리를 찾아가는 중이다. 돌이켜보면 한때는 막차가 끊길 때까지 잔을 부딪치는 것이 우정의 증거인 줄 알았다. 지금은 잔을 내려놓을 이유가 끝도 없다. 아이를 재우고 나면 하루치 체력은 바닥나 있고, 새벽같이 눈을 뜨는 아이는 엄마의 숙취를 봐주지 않는다. 술값은 올랐고 회식은 짧아졌다. 무엇보다 오늘 밤의 흥보다 내일 아침의 컨디션이 귀해졌다. 한때는 2차, 3차를 외치던 사람들도 이제는 다음 날 일정과 몸 상태를 계산해 술잔의 속도를 조절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해서 모임에서 빠지는 것도, 분위기를 망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다들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이따금 아쉬움이 밀려온다. 내 인생의 꽤 많은 고백은 술잔 너머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퇴사를 결심했다는 친구의 이야기나 오래 묵혀둔 서운함은 대개 두 번째 잔쯤에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술이 우리를 이어준 것은 아니지만, 말문을 여는 열쇠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술잔이 비워진 자리에 다른 풍경이 들어왔다. 술 대신 커피를 앞에 두고 마주 앉은 자리에서도 대화는 얼마든지 길어졌다. 취기에 기대지 않으니 말을 고르게 되고, 말을 고르다 보니 마음도 더 정확하게 전해졌다. 맨정신의 고백에는 조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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