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의 예상되는 수명(기대수명}은 83.5년(2023년 기준)이다. 남성이 80.6년, 여성이 86.4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2.5년 더 오래 산다. 우리나라는 기대수명이 꾸준히 증가해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장수국가가 됐다. 다만 장수가 말 그대로 축복이 되려면 노년에 마주할 간병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장수가 재앙이 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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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경 제작] 일러스트
잊을만하면 나오는 게 '간병살인' 뉴스다. 가깝게는 지난 3월 경기 고양에서 투병 중인 80대 여성을 살해한 남편과 아들이 한강에 투신하는 일이 있었다. 10년 전부터 지병을 앓던 여성을 80대 남편과 50대 아들이 아무 외부 도움없이 직접 돌봐오다 끝내 범행을 저질렀다. 간병살인에 대한 정부의 공식 통계는 없다. 다만 민간연구소 자료 등에 따르면 2천년대는 간병살인이 한해 평균 5.6건 정도였는데 2020년대 들어서 평균 18.8건으로 급증했다고 한다. 고령인구 증가의 영향이 크다고 봐야 한다.
오래 살더라도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지만 그게 쉽지 않다. 대표적인 노인 질환인 치매 환자가 내년이면 100만명을 넘을 것이란 전망이 나와 있다. 65세 이상 인구 10명 중 1명이 치매를 앓는다는 얘기다. 치매 환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실상 24시간 돌봄이 필요해 가족에게 막대한 간병 부담을 준다. 경제적 부담뿐만 아니라 심리적 부담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잖다.
내가 늙고 병들면 누가 돌봐줄 것인가. 노년을 앞둔 모두가 고민하는 문제다.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의 의뢰로 지난 4월 40세 이상 남녀 1천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가장 많은 39%가 '요양보호사'가 돌볼 것이라고 답했다. 배우자(35%), 본인 스스로(21%)가 뒤를 이었고, '자녀가 돌봐줄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4%에 불과했다. 특히 배우자가 돌봐줄 것이라는 응답은 남성이 49%, 여성이 22%로 성별 차이가 2배 이상이었다. 남성의 배우자에 대한 기대가 훨씬 큰 셈이다.
이밖에 돌봄서비스 제공 책임 주체는 국가(85%)라는 응답이 대다수였다. 이를 위해 세금 지출을 늘리는 데는 85%가 찬성했다. 돌봄을 받고 싶은 장소로는 집과 지역사회 등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원하는 사람이 79%였다. 노인복지시설 입소를 원하는 사람은 7%에 그쳤다. 노인 돌봄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는 '자부담 경감'을 꼽았다. 무엇보다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경제적 부담을 국가와 사회가 나눠지길 바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치매 환자의 1인당 연간 관리비용이 지역사회에 머무는 경우 1천733만9천원, 시설·병원에 있는 경우 3천138만2천원이나 됐다.
개인의 간병비 부담을 덜기 위한 방안으로는 건강보험 적용 문제가 늘 거론된다, 이번 대선에서는 간병비 건보 적용이 공약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항상 재원이 걸림돌이다. 연간 10조∼15조원의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건보 재정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다. 그렇다고 미루기만 할 일은 아니다. '간병 부담을 개인이 아닌 사회가 함께 진다'는 원칙하에 사회 구성원들이 고민하고 하루빨리 방책을 찾아야 한다. 지금도 간병이라는 끝없는 굴레 속에서 누군가는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국가와 사회의 손길이 급하다.
bondong@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5월22일 14시02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