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한번 가려면 사흘이 걸립니다.”
40년 넘게 충남 태안군의 작은 섬 육도에서 거주한 김하운 씨(89)는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아예 2박 3일로 일정을 잡는다. 하루 한 편뿐인 배를 타고 인천 시내로 나가야 해서다. 그마저도 기상이 악화되면 계획이 그대로 무산된다.
지난 5일 육도 복지회관에는 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임시 보건소가 차려졌다. 대웅제약, 고려대안산병원으로 구성된 진료팀이 낯선 의료 장비와 함께 주민 30여 명이 사는 육도를 찾았다.
◇AI로 실명 가능성 진단
현장에서는 정밀 안과 진단부터 심전도, 혈당 측정까지 종합병원에서만 가능한 수준의 검사가 이뤄졌다. 인공지능(AI) 기반 진단 솔루션과 경량 측정기기가 있어 가능했다. 의료진은 대웅제약의 실명 진단 AI 플랫폼 ‘위스키’를 활용해 당뇨병성 망막병증, 황반변성, 녹내장 등 실명을 유발하는 3대 안질환 발병 가능성을 진단했다. 주민들은 심전도를 확인하기 위해 측정기기인 ‘모비케어’ 패치를 가슴에 붙였다. 이 기기는 사흘간 얻은 심전도 데이터를 분석해 부정맥을 판별한다.
진료를 마친 주민들은 연속혈당측정기(CGM)도 착용했다. 일상 속 혈당 변화를 추적해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단발성 검진을 넘어 지속 가능한 건강관리 수단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날 진료 결과는 환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전달되며, 이상징후가 발견될 경우 협력 병원과 연계해 치료를 받게 한다. 일회성 방문 진료가 아닌 장기적 건강 관리로 이어지는 구조다. 김도훈 고려대안산병원 교수는 “향후 원격진료를 할 때 이 데이터를 참고해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역적 건강 불평등 해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전체 시·군·구 중 37%에 해당하는 98곳이 30분 안에 응급실에 도달하기 어려운 응급의료 취약지로 지정돼 있다. 의료 인력의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화하면서 지방은 인력뿐 아니라 병상·장비도 부족하다. 이런 구조에서 섬과 농촌, 고령화 지역은 지역소멸과 맞물려 더 소외되고 있다.
이에 최근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활발하다. 제주도는 올해부터 도내 48개 보건진료소와 제주대병원 등 11개 의료기관과 연계해 디지털 화상 진료 및 스마트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강원도는 지난해 5월 원주시를 AI 헬스케어특구로 지정해 디지털 전환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AI 플랫폼 개발의 기반이 되는 건강보험공단 건강검진 데이터도 국내 최초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시장조사업체 노바원어드바이저에 따르면 세계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2024년 398조원에서 2033년까지 2231조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연평균 21% 이상의 고성장이 예측된다. 조병하 대웅제약 마케팅사업부장은 “디지털 헬스케어가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 주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점을 확인했다”며 “이동성과 실효성을 갖춘 솔루션을 도입해 더 많은 현장에 적용하겠다”고 말했다.
태안=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