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설계·생산 원스톱…서울의 임상역량, 美·中보다 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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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시작된 임상시험이 세계 최초의 폐암 신약 승인으로 이어졌습니다.”(조병철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장·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교수)

세계 1위 제약사 존슨앤드존슨(J&J)이 개발한 ‘리브리반트’는 202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특정 돌연변이(엑손20 삽입 변이) 폐암 치료제로 첫 승인을 받으며 항암제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임상을 맡은 한국 의료진의 통찰력과 과학적 실행력이 신약 탄생으로 이어진 결과라는 게 글로벌 제약·바이오업계의 평가다. 한국이 임상시험 설계부터 의약품 생산까지 전 주기를 아우르는 역량을 기반으로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 신약 효과 알아본 한국 의료진

16일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글로벌 임상시험에서 점유율 3.46%를 나타내며 미국(21.15%), 중국(14.59%), 호주(4.24%) 등에 이어 6위를 기록했다. 다국가 임상시험을 제외한 단일국가 임상시험에서는 점유율 3.99%로 3위를 차지했다.

신약설계·생산 원스톱…서울의 임상역량, 美·中보다 우위

서울의 임상시험 실적은 더욱 두드러진다.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의정 갈등 여파로 중국 베이징에 1위를 내줬지만 상하이, 미국 휴스턴 등을 제치고 2위를 기록했다. 의정 갈등이 완화되면 이른 시일 내에 선두를 재탈환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은 “우수한 한국 병원의 진료 역량이 양질의 임상시험으로 이어지는 기반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연세대세브란스병원 등은 보건복지부로부터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돼 임상시험 전담 인력과 연구개발(R&D) 인프라를 갖췄다. 특히 항암제와 희소질환 등 고난도 분야에서 최고 수준 역량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는 글로벌 신약 개발을 촉진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조 교수팀은 2015년 세계 최초로 임상시험에서 특정 돌연변이를 지닌 비소세포폐암 환자에게 리브리반트를 투여했다. 당시 개발사인 J&J는 이 약물이 어느 암종에서 효과를 보일지조차 확정하지 못한 상태여서 다양한 고형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1상을 진행 중이었다. 조 교수는 리브리반트의 효능을 확인한 뒤 곧바로 J&J 본사와 적응증을 논의했다. 조 교수는 “임상시험에서 신약의 약효가 확인돼도 의료진이 대수롭지 않게 넘길 때가 많다”며 “우리 연구팀은 ‘이 약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 글로벌 임상개발 파트너로 성장

국내 임상시험대행(CRO) 업체들은 한국의 선진 의료 인프라와 연계해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단순 임상시험 운영을 넘어 초기 설계부터 인허가 대응, 데이터 관리, 병원 네트워크 연계까지 전 주기를 아우르는 서비스 역량을 확보했다. CRO는 신약 개발의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복잡한 임상시험과 규제 대응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핵심 인프라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국내 CRO 총매출은 2014년 1023억원에서 2023년 5463억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외국계 한국지사 CRO의 매출은 1917억원에서 4338억원으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씨엔알리서치 관계자는 “예전에는 글로벌 CRO만 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일들을 이제는 국내 회사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약 개발의 최종 종착지인 생산 능력도 앞선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단일 기업 기준 세계 1위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현재 인천 송도에 총 78만4000L 규모의 생산 설비를 가동 중이며, 건설 중인 6공장이 완공되면 2027년 생산 능력은 96만4000L가 될 전망이다.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은 “임상부터 정밀의학 기반 개발, 생산까지 모든 영역에서 한국의 경쟁력은 이제 단순한 ‘후발주자 추격’이 아니라 ‘글로벌 선도’ 수준에 올라섰다”며 “앞으로도 글로벌 신약 개발에서 한국의 허브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림 기자 youfore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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